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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 준비론 무엇이 문제인가?
이 글은 고경태 목사님이 운영하는 형람서원에서 퍼왔습니다. 이 글은 최낙범 박사님(총신대 조직신학교수. 새순교회)의 글입니다. 회심 준비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 회심 준비론, 무엇이 문제인가?
현재 한국교회에 미국(뉴잉글랜드)의 청교도 회중파들로 형성된 회심준비론이라는 교리가 확산되고 있다. 회중주의에 기반한 회심준비론은 개혁주의 회심론과 같지 않다. 그런데 한국의 개혁교회 진영에서 회심준비론이 확산되고 있다. 그것은 청교도신학을 개혁신학의 적통이라고 생각하거나 개혁신학과 동일하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미국 청교도 회중파 신학을 접한 한국의 신학자들이 그것을 신학대학원에서 개혁신학처럼 가르치고 있고. 또 부흥과개혁사에서 청교도 회중파 신학자들의 저서들을 개혁신학인 것처럼 발간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협회(대표 진용식 목사)가 신학적 위기감에 빠진 한국교회를 위해 2021년 5월 21일에 인천 성산교회당에서 조나단 에드워즈 회심 준비론 비판 세미나를 시행한바 있다(발표: 정성구 박사, 진용식 목사, 논평: 서철원 박사).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이다. 여기서 회심 준비론이란 청교도회중파의 핵심교리로서 웨슬리, 로마교회교리와 유사한데, 내가 예수 믿기로 작정하고 회개하므로 구원받기 전에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회심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듣지 못한 용어이다.
그러면 지금까지 우리가 청교도회중파신학을 개혁신학으로 알고 청교도 회중파신학자들의 저서를 사랑하며 읽어왔는데, 청교도회중파의 회심 준비론에 어떤 문제가 있기에 개혁주의 구원론의 회심을 지향하는 우리가 청교도회중파의 회심 준비론을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청교도 회중파들은 회심 이전에 율법을 준수해야 된다고 한다. 이는 청교도 회중파인 조나단 에드워즈의 말에서 입증된다. “구원 얻는 회심을 획득하는 길은 당신의 삶을 철저히 계획하고, 율법의 두 돌 판에 나타난 모든 의무를 다 행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찾는 것이다.”(에드워즈의 생애와 사상, p.259 양낙흥 저)
또 토마스 셰퍼드의 말에서 입증된다. “율법과 복음 둘 다를 전하는 것은 좋지만 복음만 전해서는 안 되며 차라리 율법을 먼저 전해야 한다.”(에드워즈의 생애와 사상, p.65 양낙흥 저)
또 조엘 비키와 폴 스몰리의 말에서 입증된다. “구원의 순서에 있어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회심을 위한 준비가 필요한데, 즉 성령께서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닫게 하시고 마음을 겸비하게 하고, 기경하여 통회하게 하여 믿음을 일으켜 그리스도를 찾게 만드는 것이다”(조엘 비키 & 폴 스몰리, 은혜로 말미암는 준비, p.15. 마루투스 역) "하나님은 택자들이 복음으로 회심하기 전 율법을 통해 참된 회개를 이루도록 정해 놓으셨다. 이것을 체계적으로 정립한 것이 청교도 준비론이다."(조엘 비키 & 폴 스몰리, 은혜로 말미암는 준비, p.17~18. 마루투스 역)
그러나 개혁주의 구원론은 회심이전에 율법준수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구속사역을 통해 율법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는 율법이 몽학선생이므로 준수를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리스도가 구속을 완성했기에 그를 믿으면 된다. 물론 구원받은 후 율법의 도덕법준수는 여전히 삶의 규범으로 유효하다. 또 하나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타락하므로 구원을 위해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 대신, 인간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될 때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 의식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고 지난날의 죄악 된 모든 삶을 회개하고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전향한다는 결단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개혁주의 구원론의 회심은 율법준수의 전제 없이 복음 선포와 함께 성령이 주도적으로 선택자를 감화 감동할 때 인간이 예수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일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청교도 회심 준비론은 율법주의 신학이 될지언정 개혁주의 신학이라고 할 수 없다.
둘째, 청교도 회중파들은 회심 이전에 선행을 해야 된다고 한다. 이는 에드워즈의 말에서 입증된다. “회심을 위해 해야 할 일은 성경 읽고, 기도하고, 설교 듣고, 예배 출석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사람에 대한 공의와 자비를 행해야 한다. 부모에 대한 의무, 형제와 자매에 대한 의무, 남편과 아내와 자녀에 대한 의무, 이웃에 대한 온유와 공의와 자비의 의무를 행해야 한다.”(에드워즈의 대표설교선집,p.183. 백금산 역)
또 에드워즈의 말에서 입증된다. 그는 “불우이웃돕기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비결이다.‘에서 사랑의 행위와 자신이 ‘영적은혜라고 부르는 것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에드워즈는 사랑의 행위가 그리스도와 연합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며, 구원의 확신을 얻는 가장 중요한 방법일 뿐이다. 그러므로 불우이웃돕기는 그리스도와 관계를 지속시키며, 더 나은 영적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에드워즈의 대표설교선집. p53. 백금산 역).”
그러나 개혁신학은 아무리 선행이 가치가 있다고 해도 선행을 회심의 준비단계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죄 가운데 태어나 죽을 수밖에 없는데,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인간대신 죽으시므로 죄로부터 구속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개혁신학은 구원에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가 강조되지 않고 예수의 공로를 믿는 믿음만 강조된다.
그럼에도 청교도 회중파가 회심 이전에 선행을 해야 된다고 하면, 인간이 하나님 앞에 지은 죄로 인해 전적으로 타락하고 전적으로 부패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다. 물론 개혁신학도 선행을 강조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개혁신학에서의 선행은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자에게 자연스럽게 따라 오는 성령의 열매일 뿐이다. 그러므로 개혁신학은 구원 받기 전에 회심준비로서 선행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청교도 회중파가 회심 전에 인간 편에서 선행을 해야 된다고 계속 주장한다면 스스로가 개혁신학이 아님을 드러내고 만 것이다. 이런 점에서 청교도 회중파의 회심 전 선행강조는 알미니안 주의가 될지언정 개혁주의 신학이라고 할 수 없다.
셋째, 청교도 회중파들은 회심 이전에 영적각성이 있어야 된다고 한다. 이것은 죄에 대한 각성으로서 회심 준비론에서 제일 큰 문제이다. 이는 월리엄 퍼킨스의 말에서 입증된다. 그는 “영적각성이란 율법을 듣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지옥에 대해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에 대해 절망하는 것이다. 후대의 청교도들은 그것을 죄에 대한 확실한 깨달음 혹은 겸비해짐이라고 부른다. 이 단계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소망 없고 속수무책인 것을 깨닫고 구원에 대해 갈망하는 것이다.”(에드워즈의 생애와 사상, p.40. 양낙흥 저).
또 토마스 셰퍼드의 말에서 입증된다. “참된 회심, 즉 구원의 은혜를 받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네 가지의 준비단계가 있는데, 그것은 죄에 대한 확실한 깨달음과 통회, 영원히 멸망할 자신의 운명에 대한 슬픔, 심판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겸비해짐의 단계를 거쳐야 믿음을 가질 수 있다”(에드워즈 생애와 사상, p.46, p.89. 양낙흥 저)
그러나 청교도 회중파들이 강조하는 영적각성은 문제가 많다. 그것은 구속사적으로 그리스도가 구속사역을 완성했는데도, 율법을 통해 개인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철저히 깨닫고 구원의 은총을 덧입는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은 구약 시대에나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개혁신학은 다른 입장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구속사역을 완성한 후에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을 때, 성령의 역사로 자신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깨닫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고 부활한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청교도 회중파가 복음이 아닌 율법을 듣고 영적각성을 한 후 구원을 준비한다는 것은 개혁신학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청교도 회중파 신학자들인 조엘 비키, 폴 스폴리, 월리엄 퍼킨스, 토마스 세퍼드, 조나단 에드워즈 등의 저서내용을 직접 분석하며 살펴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청교도 회중파신학이 개혁신학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회심 전에 인간 편에서 해야 될 율법준수, 인간의 선행, 율법을 통한 영적각성 등이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을 놓고 볼 때 청교도 회심 준비론은 복음으로는 부족하니 그 이전에 인간 편에서 준비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 후에 복음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복음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청교도회중파의 회심준비론이 개혁신학의 회심과 달리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회심을 준비하게 하므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구원에 이른다는 바른 교리에서 빗나가게 할 뿐 아니라 구원의 확신마저 갖지 못하게 하는 신학임을 알아야 하겠다. 더 나아가 청교도 회중파의 회심준비론에 미혹되지 말고 개혁신학이 강조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구원의 확신과 기쁨을 누릴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잘 계승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다.
[출처] 회심 준비론, 무엇이 문제인가?|작성자 고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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