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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봄학기 교회론 특강] 교회의 속성
2017년 봄학기 특강
교회의 속성
말씀:에베소서 1:15-23
우리는 지난 시간에 교회와 예배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오늘은 교회의 속성에 대해서 공부하고자 합니다.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진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께서 내신 본래의 영광스러운 창조의 질서를 완성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하여 태초부터 계획하셨던 그 영광스러운 창조 질서를 회복하고, 그 회복된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지혜가 충만하게 드러나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러한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완성하심으로써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참조. 계 21:1-7). 이러한 궁극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가시적으로 이 땅에 건설하기 위한 기본적인 터전이 바로 ‘교회’입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장차 완성될 ‘새 하늘과 새 땅’의 모형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본질상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실체화 한 유일한 형태임을 증거합니다. 따라서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유형화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보여졌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은혜이며, 나아가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고 그 나라를 체험케 하는 은혜의 방편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실제적으로 맛보아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교회가 없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방도가 없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과 우리가 만날 터전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통치하실 기관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며 모든 삶을 책임지시고 보증 해 주시는 은혜가 상실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없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는 참혹하고 암담한 세계 속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점들을 볼 때 교회가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참으로 은혜인 것입니다. 어떠한 형태나 상태로든 교회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바로 거기에 하나님의 통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 간에 교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가운데 계신다고 하는 임마누엘의 증표가 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통치 기관으로서의 교회
이러한 의미들은 이미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계시하신 성막의 제도 속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막을 지으라고 하실 때에는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즉 성막은 첫째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 안에 임재하시어 친히 통치하시고 교제하시며 치유하시는 분이심을 계시합니다(참조. 출 15:25-26). 둘째로, 이스라엘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신분을 행사하고 그 나라의 사상을 고양하여 거룩한 나라의 문화를 세워 나가야 함을 지시하고 있습니다(참조. 출 19:5-6). 이러한 계시의 실체적인 모형으로서 성막을 세우게 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진을 칠 때는 성막을 진의 중앙에 위치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상징하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행군할 때는 이스라엘의 진 선두에 위치하게 함으로써 친히 그의 백성을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나타내도록 하셨습니다.
교회는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표시함
신분상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은 그들의 모든 삶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모든 삶을 하나님의 인도 아래 진행시켜 나아가야 합니다. 곧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 바로 성막의 역할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성막이 계시하는 의미와 일맥상통한 점이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교회가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그의 백성들에게 보장해 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고 있는 동안 최우선적인 과제가 있다면 교회의 중심이요, 주인이신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드리는 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 그리스도의 찬연한 영화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사상은 요한복음 17:1절에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에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사건을 앞에 두고 이런 대제사장적 기도를 하셨는데 그 기도를 응답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부활하게 하심으로써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부활을 근거로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 영광된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세상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이제는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 땅 위에 교회가 세워져서 존재해야 될 유일한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근본적인 일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에 그 사명을 삼고 어느 시대든 자신을 세상과 구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교회의 속성을 생각한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2. 교회의 속성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교회의 속성 중의 한 면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한다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품성을 자연히 드러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교회가 그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그 품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면 더 이상 그 교회는 교회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 보혈을 흘리심으로써 모든 죄, 곧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우리를 죄의 종된 자리에서 구속하여 주셨습니다. 그 은혜에 기초해서 교회를 세워 주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피값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교회가 세워졌기 때문에 당연히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사신 것이며(행 20:28), 그리스도의 소유(롬 7:4)로서의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룬 유기적 공동체
교회를 그리스도의 소유라고 할 때 그리스도는 교회의 주관자이심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관계 아래 교회는 그리스도를 주(主)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계를 확인하고 있다면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의 주가 되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가 될 만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출 19:4-5). 나아가 이러한 신분이라는 것은 세상의 어떤 것보다 귀한 자리에 있음을 각성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에게 그럴 만한 자격이나 가치가 있어서 당연하게 그런 위치에 다다른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성자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 앞에 약속하여 친히 우리를 택정하시고 구속하기로 결정하신 공효에 따라서 우리가 구속함을 입었다는 사실(엡 1:3-4)을 바로 알고 있다면 우리의 위치라든지 신분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의 소유로 삼아 주셨을 뿐 아니라 이제는 친히 우리와 하나 곧 일체가 되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엡 4:4-6). 그리스도의 영으로 오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교회) 안에 거하시고 친히 하나님 나라의 왕권을 가지고 우리를 통치하시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8:20절을 보면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온전한 최소 단위인 만수로서 교회를 이루게 될 때 그 중 한 사람의 몫을 그리스도께서 행사하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최소 만수의 단위를 세 사람으로 상징하는 것은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기 위해 둘이라는 공동체가 필요하고 그 두 사람의 나눔을 공감하고 그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는 또 한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셋을 완전수라고 합니다. 완전하신 하나님 역시 세 분이라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그와 같은 원리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상에서 교회를 이루는데 있어서 최소 두 사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다면 그 둘로서는 불완전하지만 그리스도께서 그들 중에 함께 계시므로 그 두 사람은 유형의 교회를 이룰 수 있는 정족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근거 아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며, 교회는 항상 그의 몸을 이루는 유기적인 공동체가 됩니다.
교회/그리스도의 품성을 드러내는 곳
이와 같은 것이 교회 속성의 중요한 한 모습이라고 한다면 이제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본체로서 그리스도의 품성을 드러내어야 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인격이 교회 안에 존재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계신 분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참조. 롬 8:1-11). 성령 하나님께서 임하시어 마음과 인격이 되어 주심으로써 그리스도의 품성을 발현할 수 있게 된 사람을 우리는 중생한 사람(요 3:3-8), 곧 성령에 속한 사람(엡 2:19-22, 4:4-5), 또는 신령한 사람(고전 2:12-16), 성령의 사람(롬 15:30)이라고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이러한 사람들을 불러 모으시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 삼고 인도하며 보호하는 주관자가 되어 주십니다(고전 12:13). 그러므로 교회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성령 하나님이 친히 그 가운데 자존(自尊)하시고(고전 6:18-20), 하나님이 만나 주시는 곳으로 하나님과의 교통이 가능한 곳이며,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만이 하나님과 교통하며, 그의 통치를 받는 유일한 기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누가 교회의 회원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효로 말미암아 이 땅에 세워진 것처럼 그 교회의 회원이 된 사람들 역시 그리스도의 속죄의 공효를 입고 신앙함으로써 중생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 중생한 자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다시 산 자들이기 때문에 먼저 전적인 자기 부정이 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즉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혀 죽었다고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갈라디아서 2:20절을 보면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우리는 이런 사람을 세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의 아상(我相)을 철저하게 버린 사람입니다. 자기의 자아를 버린 사람만이 교회의 회원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나의 주체 즉, 나 자신이 더 이상 나를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와 계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나의 주체와 나의 인격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더 이상 자신의 주관을 좇아 살지 않고, 새로운 자아 곧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것을 성경은 새사람이라고 함)을 나의 자아로 받아들여야 합니다(골 3:10).
둘째는, 자기 인생의 경영을 포기한 사람입니다. 즉 자기가 무엇을 해보겠다는 생각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더욱 분명히 아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자기 나름대로 삶의 경험으로 체득한 판단의 자료에 따라 살지 않고 이제부터는 성령 하나님께서 지시하시고 인도하시는 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성령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무엇인줄 알고 그 일을 위해 자기의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그 결과 내 안에서 성령 하나님의 인격이 전적으로 발휘되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신 일, 곧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겠다는 그 일을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모든 인생의 목표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데 있습니다.
셋째는, 자신의 능력을 의존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내 능력과 지혜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능력과 지혜를 신뢰하지 않게 됩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 곧 성령 하나님의 능력을 의존합니다. 이것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라고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여기에서 ‘행한다’는 말은 에너지를 공급한다는 말인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땅히 필요한 힘을 공급해 주심으로써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하시어 마침내 그 일을 이루기 위해 우리 안에 소원을 주시고 힘써 성취케 하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힘입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당신의 뜻을 마침내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 나가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태를 ‘헌신’이라고 합니다(롬 6:6).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위해 내 자신이 드려진 상태가 되어야만 비로소 우리는 교회의 회원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신비한 연합체
교회의 회원이 된다는 것은 날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다(고전 15:31, 갈 2:20)는 말로 달리 표현될 수 있습니다. 교회에 속해 있는 성도라면 마땅히 자기의 이익과 이상을 추구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자아까지도 포기하고 온전히 하나님의 나라 일을 위하고 하나님의 성품, 품성, 인격을 드러내며 성령 하나님의 능력에 의존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교회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처럼 성령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을 주장하사 그들을 한 인격 안에서 통일시켜 교회를 세우시기 때문에(고전 12:13) 교회를 유기적 공동체 또는 신비한 한 몸이라고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교회의 속성을 바로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서 그리스도의 성품을 잘 나타내어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가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교회로 날마다 세워져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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