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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교회 구원을 말해야 한다.
# 이 글은 황부일 목사의 글이다. 부천 개혁교회 홈페이지에서 퍼온 글이다.
기독교는 교회구원을 말해야 한다.
기독교는 개론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교로서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통한 구원의 언약과 성취의 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를 말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기독교 안에는 여러 교파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 연합단체도 있습니다. 이들은 기독교를 저마다 좋게 해석하고 목적하면서 서로 모이고 나누고 합니다.
대체적으로 일반 사람들은 기독교를 신교 구교로 나눕니다. 구교는 로마 가톨릭을 말하고 신교는 개신교라 하며, 장로교, 감리교, 루터교, 성결교, 오순절교, 침례교 등을 함께 묶기도 합니다만 예나 지금이나 기독교를 이름하고 있는 그 안에는 기독교라 해서는 안 될 교파나 무리들도 많고 예수 이름을 빌려 사교화 내지는 이단종파로 된 것들도 부지기수입니다. 또한 인본주의화 된 무리도 많습니다. 때문에 기독교라 해도 다 기독교라 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는 교회구원의 진리가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는 계시종교이다>
세상에 수많은 종교가 있지만 우리가 볼 때 두 가지로 분리됩니다. 하나는 계시종교요, 또 하나는 자연종교와 수도 종교입니다. 그러니까 각자 여건에 따라 신을 만들고 찾아가고 그 신을 중심으로 빌며 바라는 종교입니다.
기독교만이 유일하게 하나님이 사람을 찾아오신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로 선택된 그들에게만이 계시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시를 말할 때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일반 계시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만물 속에 나타나는 부분적인 하나님의 모습과 그 섭리 역사를 말합니다. 특별 계시는, 하나님께서 보다 자신을 분명하게 무엇보다 계시의 목적이 확연하게 나타내주신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리고 그 말씀의 전부이며, 그 말씀의 언약대로 나타내 주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 사람 가운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직접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사도 마태는 증거하기로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은 것이요, 그 이름은 엠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고 했습니다(마 1:23). 이것이 이미 이사야 선지자에 의해 예언되었던 바의 성취로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참 계시인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증거했습니다(요 1:14, 18). 사도 바울도 증거하기로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라고 했습니다(골 1:14-15).
빌립보서에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말씀했습니다(빌 2:6-8).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나타내심에는 그분의 작정하심이 있고 그분의 영원한 목적의 의가 있고 작정된 거룩한 뜻이 계신 것입니다. 그것을 밝힌 것이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전체가 하나님의 정하신대로 그리스도로 오심에 있고 그리스도 안에 교회 구원의 언약과 성취의 역사로 진리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그리스도 안에 있어 그의 대속으로 그의 생명의 한 몸으로 되어있는 교회구원인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진실이고 여타 모든 종교와 본질이 다른 구원의 신앙인 것입니다. 기독교는 인간이 만들고 기대대로 조성한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주권 속에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되고 언약대로 그리스도의 교회 구원을 그대로 나타내신 종교입니다. 때문에 언약 그대로의 구원을 말하지 않고 인본적으로 자기들 중심으로 예수를 말하고 구원됨을 말하면 계시된 대로의 참 기독교가 아닌 것입니다.
<교회구원을 말하지 않는 기독교의 변질>
얼마 전 부산에서 W.C.C.(세계 교회협의회)가 열렸는데 한동안 그 개최를 놓고 한국교회가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시끄러웠습니다. 그들은 ‘에큐메니칼’이라는 전 세계교회는 하나라는 운동을 벌이면서 크게 활동하지만 그들은 한마디로 말해 기독교 인본주의이고 요즘 용어를 빌리면 다원주의이고 만인구원을 말하고 만유구원을 말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구원은 죄와 사망에서의 대속 구원이 아닙니다. 형편적이고 의식적이고 공동적 변형이고 개인이나 인류공동체가 기대하는 바에 대한 구현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세계평화와 인류사회 번영과 평등과 평안을 외치며 함께 행복한 세상구현을 말합니다. 또 다르게 말하는 경우를 보면 민족구원을 말하고 사회복지나 정의실현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기독교 이상주의 자들 입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불평등하고 부정하고 빈곤과 질병과 억압과 학대와 분쟁이 많은 이 세상을 평화를 주고 서로 사랑하며 한 공동체 관계를 잘 이루는 행복한 세상을 실현하려 오셨다고 말합니다. 예수께서 그 일을 위해 혁명하시다 돌아가셨고 그의 그런 정신을 받들어 세상 구원을 실현시켜 가야 하는 것이 기독교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기독교는 기독교 안에 또 다른 기독교가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 이름을 저들 좋은대로 변질시킨 기독교로 만든 것입니다.
기독교 안에 또 다른 기독교 부류가 있는데 그것은 개인 구원을 구현하는 부류들입니다. 죄 아래 형벌의 상태를 살아가는 인생을 모르고 저마다 기대하고 소원하는 것이 예수를 통해 이루어지고 자신에게 그리고 가족이나 자기가 원하는 사람에게 성취되길 바랍니다. 지금의 어려운 상태나 문제나 질병이나 낮은 처지에서 벗어나서 원하는 대로 이루고 성공하길 기독교를 통해 빌며 갖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많은 유대 무리가 예수를 현실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열심히 좇았던 것처럼 이 시대 기독교 안에는 예수를 문제 해결사로 만사형통의 능력자로 찾는 무리가 많은데 이것은 기독교 안에 샤머니즘이고 기독교를 빌린 이교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독교가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 종교를 보면 그들이 왜 기독교가 될 수 없는지 알 수 있고 그들이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신앙하고 구약에서의 예언을 따라 메시아를 고대하는 신앙이라 하지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했고 그의 진리를 거스려 그를 죽였습니다. 그들은 오늘날 교회들처럼 메시아 이름은 가지고 신앙을 한다고 했지만 그들은 저마다 계층을 따라 메시아를 나름대로 기대의 틀을 만들어 놓고 바랐던 것입니다. 하류층의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속히 오셔서 그런 형편과 삶에서 벗어나게 해주기를 바랐고 중류층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통해 형편적 사회적 불안없이 평안과 평화의 유대나라 형성을 바랐고 상류층은 더욱 그 권세나 영화를 로마의 지배로부터 메시아의 능력의 역사를 통해 쟁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민족 모두는 오실 메시아를 통해 민족구원을 기대했고 부류에 따라 형편적인 상태에서 회복이나 개인 구원을 기대했고 결국 메시아를 통한 그들의 이상향을 원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보며 배웠으면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언약의 후손에 대한 말씀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메시아가 언약의 후손 가운데 오시어 그 언약의 후손들을 죄와 그 형벌에서 구원하시여 영원한 메시아 왕국을 이루실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기독교가 진리의 구원을 바라고 언약된 구원의 복음으로 서가지 않고 각자 자기들의 기대실현을 구원으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기독교가 아니라 유대민족 종교에 불과한 것처럼 오늘날 개인구원을 말하는 자나 사회 구원을 말하는 자나 모두 기독교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만 진리의 기독교가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기독교 모습은 성공을 바라고 개인적이나 공동적인 욕망의 성취를 위해 주여 주여 하고 그것이 안되는 형편이나 연약함이나 부족함이나 또는 모든 방해와 어려움에서 벗어나서 앞서고 크고자 함과 개인과 사회적 행복을 비는 종교로 전락된 것은 그들이 진실한 기독교가 아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교회구원을 말해야 참기독교다>
요한복음 1:10-13절에 보면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치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말씀 하셨는데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의 본질과 신앙의 원리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독교는 인간 뜻으로나 육정으로나 그 어떤 것으로 조성되거나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의 역사 속에 은혜로 되어지는 것임을 말씀함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작정하셨고 그것을 계시로 언약하셨고 그 언약대로 미리 정하심에 있는 교회된 자들을 구원해 내셨고 또한 계속 구원해 가십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진실이고 그래서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루는 믿음의 계시 종교인 것입니다. 때문에 기독교는 교회 구원을 말해야 참이고 사이비가 아닌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라 하지만 교회 구원을 말하지 않고 세상적이고 인본적인 구원을 말하는 변질된 기독교들을 보면 그들은 하나같이 교회를 진리로 모릅니다. 때문에 교회구원을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 구원을 바르게 말하려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구별시켜 영원히 세워 가시는 진리의 교회를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는 말로서 그 뜻은 ‘불러냄을 입다’, ‘구별되다’라는 것으로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에서 거룩히 구별된 무리의 회입니다.
로마서 1:6-7절을 보면 교회에 대한 정의가 잘 나왔는데 보면 “너희는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넓게는 이방인 중에서(세상 중에서) 또는 좁게는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그리스도의 것이 된 성도로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그리스도의 한몸된 연합체로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3절에 보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 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 말씀 함에도 교회가 무엇임을 잘 정의해 줍니다.
마태복음 1:21절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 심이니라”고 말씀했는데 여기서 자기 백성은 자신의 희생으로 구속하여 자기 것으로 삼으시는 교회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몸된 자로서 오시고 교회를 자신의 생명으로 구원하시려 하신 것입니다. 이런 교회 근원을 보면 이미 창세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작정하셨습니다.
에베소서 1:4-6절에 보면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 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져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를 예정하여 세우신 것입니다.
디모데후서에서 바울 사도가 증거한 그 증거를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고 말씀했습니다(딤후 1:9). 이 계획이 계시로 알려져 은혜의 언약으로 말씀한 바가 아담의 범죄 후 하나님께서 미혹 자 뱀을 저주 하시는 말씀 창세기 3:15절에 최초의 복음으로 약속된 것입니다. 거기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자가 뱀의 머리를 밟고 뱀으로부터 발을 상함을 입는 고난의 희생으로 뱀 곧 사탄의 권세로부터 영원히 원수 될 관계로 벗어남을 입는 여자의 후손이 바로 은혜의 언약으로 예고된 교회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최초의 원복음이라 하는데 복음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소식, 좋은 소식, 평화의 소식으로서 바로 복음에 교회 구원이 은혜로 언약되고 언약된 대로 하나님은 복음의 능력으로 언약의 후손들을 불러내시고 그의 교회로 세워 가시는 것입니다.
교회된 여자의 후손에 관하여 사도바울도 증거 하는 바를 보면 아브라함에게는 두 아들이 있는데 하나는 계집종의 자식이요 하나는 자유 하는 여인에게서 났다고 합니다. 계집종의 자녀는 하갈을 통해 난 이스마엘이고, 자유 하는 여자의 아들은 이삭인데 이스마엘은 육체를 따라 난자요, 이삭은 성령을 따라 난자로서 계집종의 아들은 자유 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할 것이라 했고, 또한 육체를 따라 난자가 성령을 따라 난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다 했습니다. 그러니까 창세기 3:15절에서 뱀의 후손이 여자와 여자의 후손과 원수된 것같이 이스마엘과 이삭의 관계가 그랬고 지금도 세상과 교회관계가 그러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교회된 우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했고 또한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라 이삭과 같이 자유 한 여자의 자녀라고 증거 했습니다. 또한 계집종으로 나오는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데요(즉 율법으로 정죄된 죄의 종된 자들) 자유한 여자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요, 자유자니 곧 우리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갈 4:21-31).
그리스도께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통한 교회 구원(여자와 여자의 후손이 뱀으로부터 구별됨)은 만세 전에 예정되어 있었고 그대로 계시언약 하셨고 언약대로 교회 구원이 성취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는 그 안에 예정된 교회를 범죄이후 그 죄의 권세에서 구원하시려고 언약대로 교회됨으로 오셔서 자신의 한 생명 안에 언약된 여자와 여자의 후손을 자신의 죽으심으로 구원하여 내시고 자신의 몸된 교회로 삼으신 것입니다.
예수는 오직 언약된 교회를 위해서만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거룩히 세우신 것이 영원한 그분의 교회인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구원의 신앙의 진리인 것입니다.
로마서 8:29-30절을 보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위해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바울은 증거했습니다. 이 말씀은 교회 구원의 원리인데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 아들의 형상 즉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위해 정하셨다 한 것은 그리스도의 교회된 모습이 어디에 있고 어떠해야 하는지를 이미 정하셨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은 그분의 교회로 그리스도의 몸된 모습으로 세워 가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복음에 있습니다.
교회 구원이 복음에 언약되어 있고 그 복음이 전파되면서 교회된 자만이 불러지고 불려진 그들에게 있어 계속적인 복음의 역사가 그리스도로 서가는 교회 모습을 가지는 진리의 교회로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증거하기를 “하나님이 처음부터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살후 2:13-14)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교회 구원을 정하시고 복음으로 언약하시고 그대로 교회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종교입니다. 그러니까 교회 구원을 말하지 않고 인간 기대의 구원을 말하고 인간공동체의 이상을 구원으로 말하는 기독교는 진리가 아니고 진실치 못한 것입니다. 성령이 이루어 가시는 참된 기독교는 복음에 합당한 교회 구원을 통해 어디서나 진리로 통일되고 진리로 서가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교회 구원을 말하는 기독교만이 참된 구원의 계시종교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정의 내린다면 기독교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교회 구원이 복음이고 진리인 것입니다. 그 외에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진실한 기독교라면 교회 구원만 말하게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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