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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윤 교수의 책 '칭의와 성화'에 대한 고신대 박영돈 교수의 논평이다. 이 글이 칭의와 성화를 바르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김세윤 교수의 ‘칭의와 성화’에 대한 논평

 

칭의와 성화


박영돈 교수(고신대 조직신학)

 

김세윤 교수님의 책 ‘칭의와 성화’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어, 뒤늦게나마 책을 읽고 있는데 여러 가지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과거 김 교수님의 저서를 통해 많은 유익과 통찰을 얻었던 것에 대해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선뜻 동의할 수없는 부분들이 있어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너무도 중대한 구원의 복음에 관한 것이기에 그냥 넘어갈 수 없어 몇 가지만 지적하려고 한다.

 

1. 가장 아쉬운 점은 전통적인 구원론에 대한 김 교수님의 비판이 종교개혁의 입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 김 교수님이 일관되게 지적하는 바는, 전통적인 구원론에서는 칭의 다음에 성화가 이 단계적으로 이어지므로 윤리 없는 구원이라는 잘못된 가르침으로 치우친다는 것이다(『칭의와 성화』, p. 81). 그러나 그것은 통상적인 오해일 뿐, 개혁교회의 구원론에서는 칭의와 성화를 그런 식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칭의와 성화에 대한 종교개혁자 칼빈의 가르침은 놀라울 정도로 부요하고 치밀하며 성경적이다. 칼빈은 칭의론이 믿기만 하면 어떻게 살든지 구원은 따 논 당상이라는 식으로 왜곡될 위험성을 치밀하면서도 정교하게 발전된 논증을 통하여 철저하게 봉쇄하였다. 칼빈에 의하면, 칭의와 성화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단일한 은혜의 두 면이다. 곧 단일하면서도 이중적인 은혜이다(One grace yet two-fold grace). 칭의와 성화가 비록 우리의 사고에서는 구별되어야 하지만, 우리의 경험에서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 그러므로 둘 중 하나만을 체험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 누구도 ‘성화 없는 칭의’나 ‘칭의 없는 성화’만을 체험할 수 없다. 만약 칭의가 참된 것이라면 필연적으로 성화가 수반되기 마련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의롭게 하시면 동시적으로 그를 거룩하게 하신다. 칼빈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거룩하게 하시지 않고는 결코 의롭게 하시지 않는다고 역설적으로 말하기까지 하였다. 구원의 전 과정에서 칭의와 성화는 긴밀하게 영합하여 병행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칭의와 성화는 영원히 분리될 수 없는 연합으로 엮어져 있기 때문에, 이 둘을 서로 분리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찢어버리려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칼빈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관점에서 칭의와 성화가 긴밀히 연결되어있음을 누누이 강조하였다.

 

2.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김 교수님이 제시한 성경적인 대안이다. 김 교수님에 의하면, 칭의와 성화는 동의어이며 같은 구조와 특성을 띠고 있다. 그는 성화를 “의인됨의 성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 구원의 현재 단계를 의인됨의 성장 과정으로도 말할 수 있고, 성화에 있어서의 성장 과정으로도 말할 수 있다”(『칭의와 성화』, p. 189). 또 “칭의가 최후 심판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했다(『칭의와 성화』, p. 192). 이런 논리에 따르면, 칭의는 실제 의롭게 되는 성화가 진전됨에 따라 점진적으로 진행되다가 종말에 가서야 완성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말까지 유보된 칭의이다. 이런 주장은 비록 세부적인 내용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칭의와 성화를 구별하지 않고 연합해버린 중세 로마 가톨릭의 가르침과 유사한 논리적인 맥락으로 회귀하는 문제를 야기한다. 이렇게 칭의의 복음을 전하고 가르칠 때 목회 현장에서 부딪히는 실제적인 문제는 종교개혁 전에 신자들이 겪었던 혼란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만약 우리의 불완전한 성화에 따라 우리의 의인됨이 점진적으로 완성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과연 거룩한 하나님 앞에 바로 설 만큼 거룩해졌는지 자신할 수 없어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칭의가 우리가 이룬 거룩함에 어느 정도라도 근거한다면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기 위해 우리가 도달해야 하는 거룩함의 커트라인은 어느 정도인가? 우리가 성결해지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우리의 모습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거룩함의 기준과 거리가 멀다는 사실만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종교개혁 시 루터가 겪었던 영적 고뇌였다. 만약 이런 가르침을 따라서 신앙 생활한다면 교인들은 하루도 구원의 확신을 누리며 살 자신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개혁주의 입장에서는 칭의와 성화가 연합되어있지만 날카롭게 구별되지 않으면 중세 로마 가톨릭에서처럼 복음의 핵심이 심각하게 변질된다고 본 것이다. 칼빈에 의하면, 칭의와 성화는 영원한 끈으로 하나로 엮어져있지만, 이 둘은 논리적으로 구별될 필요가 있다. 칭의는 우리 안에서 이루어진 불완전한 의로움이 아니라 우리 밖에서 이루어진 외래적인 의로움, 즉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의 대리자로서 율법의 요구를 완성하신 의로움에 전적으로 근거하여 영 단번에 내려진 은혜로운 법적 선언이다. 우리는 이 칭의의 영원한 바탕 위에서만 죄사함과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 이 칭의의 바탕을 떠나서 우리가 이룬 보잘 것 없는 거룩함을 의존해서는 한 순간도 주님 앞에 설 수 없다. 우리가 서 있는 영원한 칭의의 반석은 우리의 연약함과 성화의 부진으로 인해 결코 흔들릴 수 없고 변개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우리의 의로움으로 보완되고 강화될 수도 없다. 라일 감독(J. C. Ryle)이 말했듯이, 천국에 있는 성도들도 우리보다 더 칭의되지 않았다.

 

우리는 구원받은 후 칭의에서 바로 성화의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설 때까지 칭의의 바탕 위에서 신앙생활하는 것이다. 이 반석 위에서만 감사와 확신과 자유함과 계속되는 용서와 회복의 은혜를 누리며 진정한 성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이것이 칭의의 종말론적인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칭의를 기독론적-종말론적 관점에서 ‘이미와 아직도(already and not-yet)’의 구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김 교수님이 주장하듯이 종말론적으로 유보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확정되었고 종말론적으로 최종 확증될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내려진 선언과 앞으로 내려질 선언의 근본 내용은 동일하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의롭다고 인정받았다는 사실에는 변동이 없다.

 

사실 성화는 실패를 통한 성화이다.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험난한 여정에서 신자는 연약하여 수없이 쓰러진다. 그 때마다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영적인 회복의 바탕과 다이내믹이 바로 칭의의 은혜이다. 비록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함 가운데 살지라도 하루도 회개할 필요가 전혀 없는 날을 살기가 어렵다. 그래서 성자는 다른 이들보다 더 자주 회개하는 죄인일 뿐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더 거룩해질수록 자신의 의로움보다는 칭의의 은혜만을 더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이 칭의의 복음이 진정으로 거듭나지 않아 애초부터 거짓된 믿음을 가진 자들, 그래서 결국 멸망할 자들에게는 악용될지 모르나, 성령으로 거듭나 죄에 대해 예민해진 신앙양심을 가짐으로 작은 죄에도 고통 받고 자괴감에 시달리는 신자들에게는 유일한 위로이며 피난처이다. 칭의론의 남용을 지나치게 우려하는 것은 그다지 지혜롭지 못하다. 진리를 악용하는 자들은 항상 존재한다. 사실 칭의의 복음이 망하는 자들에게나 방종의 라이선스로 남용되지, 성령으로 거듭나 구원받을 자들에게는 오히려 위로와 안식의 유일한 근원이며 경건의 바탕으로 순기능 하는 면이 훨씬 더 많다. 칭의론의 남용을 막으려다가 오히려 참된 신자의 위로와 성화의 원동력까지 앗아갈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결국 칭의와 성화를 혼동하면 구원의 확신이 심각하게 위협받을 뿐 아니라 진정한 성화를 가능하게 하는 수많은 위로와 유익을 유실하게 된다. 개혁주의 칭의론은 구원뿐 아니라 성화의 전 과정까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영원불변한 사랑 가운데 진행된다는 구원의 선물적인 특성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교리이다.

 

칼빈은 로마 가톨릭의 오류에 대응하여 칭의와 성화를 날카롭게 구별하는 동시에, 성화의 중요성을 약화시키는 무율법주의 위험에 대비하여 칭의와 성화의 연결성을 강조했다. 이와 같이 칭의와 성화의 구별성과 연결성을 균형 있게 적용함으로써 율법주의와 무율법주의 양극단을 효과적으로 물리치는 전략적인 논증이 성경에 근거한 개혁주의 구원론의 핵을 이루고 있다. 이 귀한 선진들의 통찰을 영적유산으로 물려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교회의 강단에서조차 이러한 가르침과 동떨어진 값싼 은혜의 복음에 가까운 메시지가 전파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전통의 틀에 갇혀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좋은 전통을 모르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신앙의 선진들로부터 전수된 역사적 신앙의 진귀한 유산을 섭렵한 바탕위에서만 참된 진보가 가능하다.

 

한국교회에 만연한 왜곡된 복음을 바로 잡으려는 김 교수님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하겠으나 그마저 선진들의 지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칭의론에 대한 통상적인 오해 속에서 이 책을 썼다는 점이 못내 아쉽다. 500년 개혁교회의 전통을 지탱해온 핵심교리를 뒤집는 주장을 할 때는 그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분석이 마땅히 전제되어야 하는데, 그런 신중함이 결여되었다는 것이 이 책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성경신학자들이 이런 오류를 범하기 쉽다. 어떤 주관이나 신학적인 전제가 완전히 배제된 성경해석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김 교수님이 개혁주의 구원론을 온전히 이해했다면 그의 해석의 관점은 전통적인 견해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본다. 세부적으로 논하고 싶은 점이 많아 ‘칭의와 성화’에 대해 또 하나의 책을 써야 하나 고민하게 된다. 책의 제목은 ‘다시 전해야 할 칭의의 복음’이 어떨지...

 

칭의의 복음을 재발견함으로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500년 개혁교회의 역사 속에서 이 복음이 바르게 전파될 때마다 교회가 부흥하고 건강하게 세워져갔다. 한국교회의 윤리적인 문제는 개혁주의 칭의론 때문이 아니라 이 교리가 바르게 전수되어 전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이 재정립한 칭의론의 부요한 함의와 풍성한 축복을 제대로 전하는 설교를 좀처럼 들을 수 없는 것이 한국교회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한국교회가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이 전통적인 입장을 도외시함보다 재 발굴하여 바르게 전파해야한다. 복음 사역자들이여, 개혁교회의 생명줄이라고 할 수 있는 칭의의 복음을 여러 도전 앞에 주저하며 부끄러워하지 말고 담대히 전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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