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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지서에 나타난 선지자 언약의 중심 사상-이사야 언약
# 대선지서에 나타난 선지자 언약의 중심 사상-이사야 언약
이천우 목사(부천개혁교회)
본 글에서는 대선지서의 선지자 예언에 나타나고 있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 설명할 것인데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에서의 하나님의 언약을 다룰 것이다. 에스겔서와 다니엘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언약은 추후에 다루겠다.
이사야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언약
대선지서의 선지자로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사람은 이사야이다. 구약성경에는‘이사야’란 이름이 여러 번 등장한다(대상 3:21; 25:3, 15 등). 그러나 이사야서의 선지자 이사야는 자신을‘아모스의 아들’이라고 밝힘으로써 다른 이사야와 구별 한다. 그러나 이사야의 부친인 아모스는 선지지 아모스와는 또 다른 인물이다. 즉, 동명이인이다.
이사야란 이름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또는 “여호와가 구원을 주시다”를 뜻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이 뜻을 지닌 이름에 있는 그를 통해 예언의 말씀을 전하게 하시는 것에서 이사야서가 무엇을 말하기 위해서 기록된 것인지를 알려 주시고 있다.
선지자 이사야는 남왕국 유다 예루살렘에 살면서 활동한 선지자인데, 이사야서가 기록된 시기는 이사야 1장 1절에서 밝히고 있는 유다 왕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B.C. 715-686) 왕 시대를 거쳐 므낫세 왕의 통치 기간에 이르는 상당히 오랜 기간을 선지자로 활동하였다. 그런 그는 웃시야 왕의 통치 기간(B.C. 790-739)에서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선지자 사역을 시작하여 므낫세의 통치 기간(B.C. 686-642) 직후인 주전 681년에 사망1)했기 때문에 최소한 58년의 긴 기간을 선지자의 활동에 있었다.
이사야 언약이 다루어지고 있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암울하다. 이사야서는 1-66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시편 다음으로 많은 분량이다. 이 이사야서는 남왕국 유다가 장차 당할 일이 예언되어 있다. 그것은 조상들의 죄악에 그대로 있어 여호와이신 하나님에게서 떠나 있는 범죄한 백성 유다 민족이 겪을 비참에 관한 것이다. 언급한 바와 같이 선지자 이사야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선지자로 활동한 때는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다스리던 시대였다(사 1:1)를 거쳐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의 통치 기간 직후인 주전 681년이므로, 그의 선지자 사역은 웃시야 왕 때부터 시작하여 므낫세 왕의 재위 중 때까지에 이르는 오랜 기간이었다. 그리고 이때는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3차례 침공(B.C. 606, 597, 586)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는 그의 죽음으로부터도 아직 100년 가까이 이르는 기간이 있는 시기요, 그가 선지자로 사역을 시작하게 된 때로부터는 아직 약 160년 가까이 이르는 기간이 있는 시기였다.
그런데 이처럼 아직 많은 세월이 있는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선지자로 세우시고 그를 통하여 남왕국 유다 백성을 범죄한 나라임을 주지시키며 그 민족이 겪을 비극의 노래에 있을 것임을 알려주신다.
선지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할 이스라엘은 선지자를 배척함으로써 선지자가 없는 자로 살아간다. 그러한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없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을 하나님을 상실한 마음에 두고서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에 있는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그들이 바벨론 포로생활2)에 처할 것의 예언에서 알려주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기에서도 그들의 구원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그것은 이사야 언약이 주어지기까지 있어온 노아 언약, 아브라함 언약, 다윗 언약이 영원한 은혜 언약으로 주어진 까닭에 이 언약이 성취하실 계획을 갖고 계신다.
이사야 언약은 이 언약에 의해 행하시게 될 새언약을 다루고 있는 것인데, 이사야서에서 선지자 이사야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예언한 이 새언약은 그 이전에 있어온 언약에 비해서 새로운 것이란 것에서 주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사야 언약 이전에 있어온 언약과는 전혀 다른 언약으로 주어진 새로운 언약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사야 언약은 이것에 앞서 주신 언약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앞으로 하실 ‘새 일’이 언약으로 주어지고 있는 것에서 언약의 점진적 발전성의 특성에 따른 장차 행하실 일의 구체적 내용을 예언을 통해 새롭게 알려 주시고 있는데 따라 언약의 내용이 새롭다. 선지자 이사야의 언약은 이사야서 1-66장에서 전반부에 해당하는 이사야 1-39장에서 보게 되는 메시야 언약 사상이 다루어지는 것과 관련하여 그 연계에 의해서 이사야서 후반부로 볼 수 있는 이사야 40-66장에 걸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아브라함 언약, 노아 언약, 다윗 언약이 다루어지는 내용을 언급하는 것에서 새롭게 주어지는 내용을 담고서 알려 주시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기 전에 먼저 알려 주시는 것인데 남왕국 유다가 겪는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에서 해방시켜 줄 뿐만 아니라, 이것은 남왕국 유다에 국한하지 않고 북왕국 이스라엘의 해방으로 확대 될 것이며, 앞으로 온 인류를 죄악에서 해방시킬 새 일을 행하시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제2출애굽 사건으로 불릴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시키실 것처럼 제3출애굽 사건이 될 영원한 출애굽 사건이 되는 온 인류를 죄악에서 해방시키실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여호와의 종의 노래’(42:1-14; 49:1-6; 50:4-9; 52:13-53-12)3)로 말해지고 있는 곳에서 잘 나타나 있다. 이처럼 이사야 언약은 비록 ‘여호와의 종의 노래’로 불리는 이 네 곳에서 두드러진다. 그러나 이사야 언약은 이곳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사야서 전반에 걸쳐서 이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서 오실 메시야의 약속이 주어지고 그 약속을 이루실 여호와의 종이 다루어지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 나타나고 있는 중심 사상이다.
유다, 곧 이스라엘은 이렇게 메시야의 약속이 있는 언약의 나라로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 나라에 갖고 계신 영원한 작정에 의해 있는 언약에 따라 메시야에 의해서 성취해 가실 것을 예언하여 주신다. 이사야서는 이 언약이 메시야에 의해서 실현되어 가는 것에서 전개된다. : (1) 유다 민족이 겪을 비극인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가져올 남은 자들의 거룩한 씨인 메시야가 여자의 후손에 의해서 성취될 것에 약속되고 있는 새언약 사상(1-12장) (2) 열방을 심판하실 여호와의 날에 성취될 메시야의 새왕국에 약속되고 있는 새언약 사상(13-39장) (3) 하나님의 언약에 나타내신 영원한 언약에 의해서 이스라엘의 구속자가 될 ‘여호와의 종’의 사역으로 말미암은 메시야의 새왕국에 약속되고 있는 새언약 사상(40-66장)을 말한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는 곳은 40-66장 부분으로 이곳에서는, (1) 노아 언약(42:5-6; 54:7-10) (2) 아브라함 언약(41:8-10; 49:5-6; 51:1-3) (3) 다윗 언약(55:1-5)을 언급해 주시는 것에서 (4) 새언약(42:9)을 말씀해 나가신다.) 이 모두에서 나타내신 새언약에 의해서 온 세상은 새노래를 부름에 있게 된다. 이 부분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① 유다 민족이 겪을 비극인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가져올 남은 자들의 거룩한 씨인 메시야가 여자의 후손에 의해서 성취될 것에 약속되고 있는 새언약 사상(1-12장) : 이사야서 1장은 먼저 이사야가 어느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인지와 그가 기록하고 있는 이사야서가 무엇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이사야가 선지자로 사역하는 활동 시기에서 보는 유다를 다스리는 왕은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나 있는 것이었다. (ㄱ) 웃시야 왕은 16세에 왕위에 올라 52년 동안 다스렸는데, 그가 왕으로 등극하였을 때는 그의 부왕의 초기 행적을 본 받아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행동을 하였으며, 선지자 스가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옳게 일을 하였으나, 점차 교만에 빠져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왕권에 예속시켜 제사장의 직무인 분향하는 일을 왕이 하려는 잘못을 범함으로 문둥병에 걸려 죽는 날까지 문둥병자로 있었다(대하 26장). (ㄴ) 그리고 웃시야 왕의 뒤를 이어 25세에 왕이 된 요담은 16년을 다스렸는데,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일들을 하고 모든 면에서 부왕 웃시야가 행한 모범을 따랐다. 그런 그는 부왕이 저질렀던 잘못을 잘 알기에 부왕처럼 성전을 드나드는 일을 하지 않았다. 요담 왕은 이렇게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바른 길을 걸어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으로 그가 다스리는 나라는 점점 강하여졌으므로 암몬 족속은 조공을 바쳤다. 이러한 요담 왕의 사적은 이스라엘과 유다 열왕기에 기록되었고, 그는 죽어 다윗성에 안장되었다. 그러나 그가 다스리는 시대에 백성은 여전히 악하여 부패에 있었다(대 27장). (ㄷ)그리고 요담 왕에 이어 왕위에 오른 사람은 아하스였다. 그는 20세에 왕위에 올라 16년을 통치하였는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 왕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북왕국 이스라엘 왕들이 행한 악한 길을 따르며 우상을 부어 만들고,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분향하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의 자녀들을 불사르고, 또 산당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다. 이런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아람 왕의 손에 넘겨 치게 하심으로 많은 유다 백성들이 포로가 되어 다메섹으로 잡혀갔다. 그런가 하면 북왕국 이스라엘 왕 베가의 침공도 받아 수많은 유다 백성이 죽임을 당하였는데 하루 동안에 십이만 명을 죽였는데 이 숫자는 다 용사만을 가지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에브라임의 지파의 용사 시그리는 왕의 아들 마아세야와 궁내대신 아스리감과 총리대신 엘가나를 죽였다. 이 모두는 아하스 왕이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 그런 아하스 왕은 죽어 다윗성에 안장되기는 하였으나 이스라엘 왕들의 무덤에는 들어가지 못하였다(대하 28장). (ㄹ) 아하스 왕의 뒤를 이은 왕은 히스기야 였다. 그는 25세에 왕위에 올랐으며, 29년 동안 예루살렘에서 통치하였다. 히스기야 왕은 부왕 아하스와는 달리 그의 조상 다윗 왕을 본받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통치를 하였다. 히스기야 왕은 요시야 왕과 함께 유다 왕으로서 나라를 하나님의 의로 세우려고 나라 안에 있었던 하나님을 향한 불의를 척결하는 것에 힘썼다. 이런 히스기야 왕의 업적을 보면, 그는 왕으로 등극하자 그의 부왕인 아하스가 폐쇄하여 버렸던(대하 28:24) 성전의 문을 다시 열고, 성전을 정결케 하는데 힘쓴 것이다. 그런 그는 유다 땅 곳곳에 있는 산당들을 훼파할 뿐만 아니라 모세 때부터 있어온 놋뱀(민 21:8-9)을 ‘느후스단’(놋쇠 조각)이라고 말하며 한갓 주물에 불과한 것을 우상화하여 왔음을 분명히 하며 부숴 없앴다. 그리고 모세의 법을 따라 번제와 화목제의 제사를 드림으로써 유다가 하나님 앞에 돌아온 것을 분명히 했다. 또한 그는 유월절을 다시 지킬 것을 명했으며, 북왕국 이스라엘도 참여하여 함께 지킬 것을 청함으로써 남왕국 유다와 함께 북왕국 이스라엘의 신앙 회복에 힘썼다. 이에 북왕국 이스라엘도 호응하였으며, 이때에 온 이스라엘은 크게 기뻐하였는데, 솔로몬 이후 그러한 일이 없었다고 했다. 이러한 히스기야 왕에 대하여 사기(史記)는 기록하기를, “히스기야가 온 유다에 이같이 행하되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와 진실함으로 행하였으니, 그가 행하는 모든 일 곧 하나님의 전에 수종드는 일에나 율법에나 계명에나 그의 하나님을 찾고 한 마음으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라고 하였다(대하 29-31장). 이런 히스기야 왕은 죽어 다윗성에 안장되었는데, 다윗 후손의 무덤 가운데 가장 노은 자리에 안장되었으며, 유다의 예루살렘의 주민들은 모두 그의 죽음을 크게 애도하였다(대하 32:32-33). (ㅁ) 그러나 히스기야 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아들인 므낫세는 12세의 나이에 등극하여 55년 동안 예루살렘에서 통치하였으나 부왕의 명성을 크게 퇴색시켰다. 이런 므낫세와 그의 통치를 받은 백성들의 악한 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며 바알들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모든 일월성신을 경배하여 섬기며, 여호와께서 전에 이르시기를 내가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영원히 두리라 하신 여호와의 전에 제단들을 쌓고. 또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제단들을 쌓고,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그의 아들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또 점치며 사술과 요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으며, 또 자기가 만든 아로새긴 목상을 하나님의 전에 세웠더라. 옛적에 하나님이 이 성전에 대하여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한 이 성전과 예루살렘에 내 이름을 영원히 둘지라. 만일 이스라엘 사람이 내가 명령한 일들 곧 모세를 통하여 전한 모든 율법과 율례와 규례를 지켜 행하면 내가 그들의 발로 다시는 그의 조상들에게 정하여 준 땅에서 옮기지 않게 하리라 하셨으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이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모든 나라보다 더욱 심하였더라”(대하 33:2-9 ).
선지자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있을 일을 이상 - 환상 계시 - 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은 위 다섯 명의 왕 중에서 웃시야 왕이 죽은 해부터 히스기야 왕이 다스리던 시대에서 였다. 그런데 이사야가 받은 하나님의 계시는 앞으로 1세기가 지나 겪을 먼 훗날에 있을 일인 유다의 바벨론 포로기를 다루고 있는 것이며, 이것에서 있을 제2출애굽으로 불리는 바벨론 포로에서의 귀환과 제3출애굽으로 불려질 하나님의 ‘새 일’에 관한 예언의 말씀이다. 왜 이러한 상황이 일어나게 되는가?에 대한 해답을 이사야서는 말해 준다.
남왕국 유다의 열왕들을 보면 하나님께 정직하여 옳게 산 행적들을 보나, 이는 또한 하나님께 정직하지 못하여 불의하게 산 행적들에 의해서 옛말이 되고 만다. 웃시야 왕으로부터 히스기야 왕에 이르기까지에서 요담 왕에게서 보듯이, 그리고 히스기야 왕 이후의 므낫세 왕에게서도 보듯이 이전의 왕들에 사기로 기록된 행적에서 이스라엘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의 본성이 바뀌어 변화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의 본성은 악한 죄성으로 오염되고 부패해 있다. 전적 타락하여 전적 부패한 죄성이 사람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히스기야 왕과 요시야 왕이 이룬 업적에 견주는 종교개혁을 신약에 이르러 마틴 루터에서의 종교개혁에서 다시 보더라도 그렇다. 이후 500년 가까이에 이르렀어도 그때 있은 종교개혁의 필요성과 그 절박성을 여전히 늘 갖는다. 세상 끝 날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본성은 오고 오는 사람들에게서 달라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에게 있게 하실 ‘새 일’을 예언 계시로 언약하여 주신다. 이것의 출발이 되는 시작점이 창세기 3장 15절에 약속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가 오실 것의 구체적인 제시이다. 이사야 1-4장은 유다 민족을 범죄한 백성으로 규정하면서 이 민족이 겪을 비극을 슬픔으로 노래하게 한다. 유다 민족이 하나님을 배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유대인들이 감히 생각이나 하며 상상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말하며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은 제물을 바쳐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에서 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행태는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과 하나도 다름이 없는 것으로 여기신다. 왜냐하면 제물을 바쳐 제사를 드리고 하늘에 두 손을 펴들어 높이 들고 기도하더라도 그것은 거짓으로 행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사 1:11-15)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고 기도를 드린 그 손으로 재물을 쌓기 위하여 사람을 쳐 죽이며, 고아들과 과부의 얼마 되지 않은 재산을 빼앗고, 약한 자를 압제하여 그들을 탄식하게 하며 한이 쌓게 하는 그들의 몸을 개복하여 마음을 거울을 들여다 보는 것 같이 볼 수 있다면 그들의 마음은 죄악에 찌들도록 물들여 있어 그 죄는 진홍같이 붉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어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에게 관심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그들의 제사와 기도는 진정성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다음의 말씀으로 권면되고 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사 1:11, 18-20)
하나님께 진정성이 없는 제사와 기도는 ‘산당 제사’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산당 제사를 종식시키신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주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이들이 시온에서 있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날이 오면 그 날에 아무도 살아남아 있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은 그 심판에서 생존해 있는 남은 자들이 있게 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불리게 하신다. 이것에서 있게 될 시온, 곧 예루살렘의 회복된 미래를 보게 되는 그 ‘싹’을 하나님은 이사야 7-9장에서 예언하신다.
7장에서는 웃시야의 손자며 요담의 아들인 아하스가 유다의 왕으로 다스릴 때 아람의 르신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인 이스라엘 왕 베가가 연합하여 예루살렘을 치기 위해서 올라왔을 때의 일을 말씀해 주시고 있다. 이때의 유다는 “아람이 에브라임에 진을 쳤다”라는 말이 전해지자, 아하스와 그 백성의 마음이 마치 숲 속의 나무들이 바람 앞에서 흔들리듯, 또는 사시나무 떨듯이 떨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셨다. “너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며 조용히 기다리고 두려워하지 마라.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예루살렘을 침공하기 위해 올라왔을지라도 그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토막에 불과하니 너희는 조금도 마음 약해지지 마라. 예루살렘이 점령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들이 누구냐? 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고 다메섹의 머리는 르신일 뿐이다. 그리고 65년 안에 에브라임은 산산조각 나서 더 이상 한 민족이 되지 못할 것이다. 또한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이고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일 뿐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머리는 누구냐? 나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냐? 그러니 너희가 내게 굳게 있으면 너희는 나의 보호를 받아 결코 무너짐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너희가 믿지 않으면 결코 굳게 서지 못할 것이다.”(사 7:1-10)
하나님은 이렇게 아람과 북왕국 이스라엘 연합군의 침공이 헛될 뿐인 것을 알려주신 후, 아하스를 향하여 그 확신에 있게 하는 것으로 어떠한 징조이든 구하는 대로 들어주실 것이라며 한 징조를 구할 것을 말씀하셨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서든지 높은 데서든지 구하라”(사 7:11)는 지금 아하스 왕에게 징조를 구하게 하시는 것이 그와 그 나라 백성을 생각하시고 보호하여 돌보시는 것에서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하스가 유다를 하나님의 보호 속에 두실 것이란 위로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말씀의 신뢰에 있지를 못하고 여전히 큰 두려움 속에 있으므로 그가 신뢰할 수 있는 징조를 보여 주시려고 하신 까닭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아하스에게 그가 어떤 징조를 구할지라도 확증을 주심으로 유대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신실하실 것임을 알려주고자 하셨다. 그러나 아하스는 한 징조를 구하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치 아니하겠나이다”(사 7:12)라고 완곡하게 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아하스를 “다윗의 집이여, 청컨대 들을찌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게 하고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서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로우시게 하려느냐”(사 7:13)라고 책망하셨다. 그런 후에 아하스가 징조를 요구할 기회를 거절하여 그 기회를 잃어버렸으므로 하나님 자신이 구원의 징표로서 기적의 아기의 탄생을 선포하면서, 또 그 아이의 유아기를 유다가 아직 고난을 당하지 않는 시기의 길이로 정하면서 자신이 선택하신 그 징조를 주신다. 그것이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라는 것이다. 이 말씀은 일반적으로 ‘임마누엘 징조’로 불리운다.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에 서 있는 다윗 왕조를 무너뜨림으로써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리는 일을 하려는 두 원수 아람 왕 르신과 그와 협작하고 있는 북왕국 이스라엘 왕 베가에 대하여 메시야의 다윗 왕조를 보호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명백한 표징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약속되고 있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래서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불리게 하실 것은 창세기 3장 15절에 약속하시고 있는 ‘여자의 후손’의 성취로 있게 되는 사건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아담에게 주시는 구원 약속에서 그의 아내 이름을 ‘하와’라고 부르게 하여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되게 하실 것을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택하심에 의해 여자의 후손으로 오는 ‘약속의 씨’, 곧 ‘약속의 아들’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집과 다윗 왕조를 이루게 하셨는데, 이제 그 아브라함의 집이요 다윗 왕가에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게 하실 것을 징조로 주시는 것을 통해서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보호 속에서 견고히 보전될 것임을 약속하시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주어진 징조는 다윗 왕국의 아하스와 온 다윗 집이 주께서 메시야 약속에 관한 그의 계획을 실현하시는 일을 보증하고 계신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던 하나의 표징으로 주어진 것이기에 그대로 이루셔서 하나님의 언약에 서 있는 다윗 왕조를 무너뜨림으로써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리는 일을 하려는 두 원수 베가와 르신을 죽음에 있게 하여 다윗 왕조를 보호하실 뿐만 아니라, 이 징조를 장차 이루실 메시야의 오실 것의 약속이 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그 약속의 성취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께서 잉태하시고 마침내 탄생하여 온 인류에 생명을 주시는 구주가 되셨다.
이사야 9장은 7장에서 예언하신 임마누엘로 불리우는 아들의 강림을 다룬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6-7)
이 말씀은 임마누엘 징조에 따라 유다가 어둡고 절망에 가득 찬 시대로 영구히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니 흑암에 처해 있는 자들에게 빛이 비추일 것이며 전쟁과 압제가 종식되고 희락이 임할 것이 예언됨에 따라서 이 모든 빛과 희락을 가져올 임마누엘, 곧 메시야의 탄생과 통치가 예언되고 있는 것이다.
유다 왕 아하스는 하나님으로부터 임마누엘 징조를 받았으나, 믿음과 확신으로 여호와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징조인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고 불릴 ‘한 아기(아들)’가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다윗의 위에 앉아서’ “지금부터 영원히” 행할 것이며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실 것이다”. 따라서 임마누엘의 강림으로 메시야 왕의 정치가 시작되어 영원할 것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과 함께 이 일을 이루시는 분이 만군의 여호와이신 하나님이심을 말해주고 있다.
이사야 7장과 9장에서의 당시 유다 왕 아하스에게 전한 임마누엘 예언과 그 강림은 처녀에게 잉태되고 출생할 ‘한 아들’에 관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다윗 왕조를 굳건히 지키실 것의 약속과 함께 이사야를 통해 이사야서에 나타난 메시야 사상은 이 아들에 의해서 전개되며 이스라엘에게 새언약으로 주어지게 된다. 이사야서를 비롯해서 구약 성경에서 메시야 계시를 말하며 그분의 사상을 성경의 중심으로 다루며 말할 때는 언제나 ‘한 아들’을 가지고서 하게 된다. 이 ‘한 아들’은 이사야에서 비로소 등장되어 말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맺으신 언약에서 약속하시고 있는 ‘그 아들’에 의해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이다. 이는 원복음인 ‘여자의 후손’(창 3:1`5)에서 주시고 있는 메시야 약속에 의한 언약의 계대성에 의해 아들의 개념이 점진적 발전성을 띠고서 이사야서에까지 이르게 되고, 이것은 또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마 1:1)에까지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사야의 예언에서 주신 징조인 임마누엘 사건이 처녀가 잉태하여 한 아들을 낳을 것으로 주어지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원복음에서 ‘여자의 후손’(창 3:15)으로 계시되고 있는 ‘그 씨’(the Seed)에 의해서 사람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적으로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복음 ‘여자의 후손’ 약속은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 계시의 기원이 된다.
이런 까닭에 이사야 10장에서는 앗수르의 멸망을 예고하면서 그 날이 오면 이스라엘과 야곱의 남은 자들이 주님을 의지할 것이니 이스라엘 백성이 비록 해변의 모래알같이 많을지라도 그들 중에서 지극히 적은 수만이 남아서 돌아올 것임을 말씀하시며, 11장에서는 범죄한 백성으로 있어 비극을 맞이할 유다 민족은 다윗 왕조의 계열이 마치 한 그루의 나무처럼 잘려 끊어질 것이지만, 그러나 그 뿌리에서 ‘그 씨’(the Seed)에 의한 ‘한 싹’이 나오며 그 그루터기에서 ‘한 가지’가 나와 열매를 맺을 것인데,4)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돌아오던 그 길을 만들어주셨던 것과 같이 또한 앗수르에 남아 있는 자들을 위해서도 그들이 돌아올 큰 길을 만들어 주시는 것이 될 것임으로 그들의 한 가운데 계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양할 것임을 말씀하신다.
그런데 이처럼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에 그들의 길이 될 ‘한 싹’, ‘한 가지’에 있는 구원자, 곧 메시야 사상은 13-39장에서 열방을 심판하실 여호와의 날에 성취될 메시야의 새왕국에 약속되고 있는 새언약 사상이 말씀되고 있다. 그리고 40-66장에서는 하나님의 언약에 나타내신 영원한 언약에 의해서 이스라엘의 구속자가 될 ‘여호와의 종’의 사역으로 말미암은 메시야의 새왕국에 약속되고 있는 새언약 사상을 말씀해 주시고 있다.
13-39장에는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 주변에 있으면서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있던 여러 나라, 곧 바벨론, 앗수르, 블레셋, 모압, 아람, 구스, 애굽, 에돔, 아라비아, 두로와 시돈의 열국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 열국에 내려질 하나님의 심판에 의한 멸망에 아람과 함께 동맹을 맺어 남왕국 유다를 위협한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이 아람의 멸망과 함께 다루어진다(17:1-6, 참조. 7:1-9). 그런데 하나님은 앗수르를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일을 하시면서 또한 이스라엘을 파멸시킨 앗수르를 심판하는 일을 하는 것을 통해서 생존에 있을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신다(7-12장). 그 하나님께서는 또한 바벨론에 대한 멸망을 예언하게 하시며, 그들에게 포로 되어 있는 야곱의 후손을 해방시켜 그들의 손으로부터 구원하실 것을 예언하신다. 이때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의 해방은 비단 바벨론 간의 문제가 아닌, 그 경계를 넘어서는 온 세계적인 것이다. 그런 것에서 바벨론 외의 다른 열국들의 멸망이 함께 예언된다. 앗수르의 멸망, 블레셋, 모압, 아람, 아람을 의지하며 우상숭배에 있은 북왕국 이스라엘, 구스, 애굽, 에돔, 아라비아, 두로와 시돈을 멸망시킴으로써 역사에서 사라져갈 것을 차례로 예언하시면서, 이 예언의 성격을 온 세계에 임할 말세의 세계 심판으로 확대하신다(17:12-14; 24:1-13).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 당대의 이스라엘 역사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서 메시야에 의해 펼쳐지는 종말론적 구원의 성격을 갖고 하나님의 나라, 곧 메시야 왕국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에서 이다.
그런 까닭에 열국들의 멸망이 예언되고 있는 사이사이에 온 세계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주님으로 모실 날이 올 것을 예언하신다. 그 날이 오면 이스라엘은 온 세계 한 가운데 우뚝 설 것이니 온 세계에 그곳으로 가는 통로가 뚫릴 것이다. 그래서 열국으로부터 오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주님으로 섬길 수 있게 유다와 한 백성이 되는 손을 잡는 그 날이 올 것이다. 그 날에 그렇게 하나님께로 나온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을 주님으로 섬길 것을 맹세함으로 그들에게 임하는 복이 실현될 것이므로 행복한 나라, 곧 평화의 나라를 이룰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유다가 북왕국 이스라엘을 좇아 죄악에 있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을 것임을 말씀하며, 온 세계가 하나님의 심판에 있을 날을 예언하신다. 그 날은 하나님께서 재앙 가운데서 자기 백성을 꺼내는 날이니 하나님의 산으로 거룩한 산이라고 불릴 시온에서 주님의 백성이 부르는 노래로 온 하늘과 땅이 울릴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온 세계를 심판하실 때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로 설 주님의 백성들은 소망을 갖는다. 하나님은 그 의로운 자들이 우뚝 설 시온산 위에 크고 견고한 주춧돌을 놓을 것이며, 그 머릿돌에는 ‘누구든지 주님을 의지하는 자는 망하지 않는다’는 글을 새겨 놓을 것이다(28:14-22). 하나님이 그들이 섬기는 법이 될 것이며 하나님이 그들이 행하는 의가 될 것이어서 하나님을 의존하는 자는 결코 망하지 않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온 세계가 얻을 구원의 미래는 그들이 하나님을 주님으로 알지 않고, 그래서 하나님을 주님으로 섬기지 않고서 하나님을 무시하고 경멸하였던 그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그러니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세상 나라의 힘을 믿지 말고, 의로 나라를 다스릴 시온의 왕이 오실 것이니 그분을 바라봄에 있을 것을 말씀하신다(32:1-8). 하나님은 이렇게 시온의 머릿돌이 될 모퉁잇돌에 설 수 있도록, 그래서 시온의 왕의 다스림을 받을 수 있도록, 그들을 변화시키는 영을 부어주실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의가 자리하고 지배하는 세상이 되게 하심으로 평화로운 나라가 되게 하실 것이니 만물의 새로움을 목독하게 될 것이다(32:15-20). 따라서 그 구함에 있는 자들은 그들에게 구하게 하신 약속대로 주께서 왕이 되셔서 언제나 안전히 지켜 주시는 보호를 받을 것이다(33:1-6, 17-24).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시온산에 놓여질 주춧돌, 의로운 시온의 왕이 오실 것은 이사야 1-12장에 나타내신 메시야 사상의 발전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온 세계로부터 나오는 사람들을 이 주춧돌과 시온 왕과의 연결에 있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영이 있음으로서 이다.
여기에 중요한 사건으로 등장하는 것이 36장에서 39장까지 다루어지는 히스기야왕(B.C. 715-686) 때 있은 일이다. 히스기야왕 14년, 곧 주전 701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의 침공이 있을 때 그 앗수르 왕 산헤립의 군대 18만 5천명을 하루 밤에 죽임으로 전쟁의 패배에 있게 하는 일을 하신 후 있은 히스기야왕이 병들어 낫지 않고 죽어가는 상황에서 그가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에있게 하는 것을 통해 그의 생명을 15년 연장시키고 그를 앗수르 왕 산헤립으로부터 구원하실 것에서 그의 뒤를 이어 다윗 왕조를 지킬 것이 약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때 히스기야왕은 아직 자신의 왕위를 이을 후사가 없었던 때였다. 그런 그는 병들어 죽게 됨으로써 왕위를 이을 후사가 없어 다윗 왕조가 끊어지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으나,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시며 다윗 왕조가 계속해서 이어져 가도록 하신다는 것을 알게 해 줌으로써 다윗 왕조의 지속이 하나님에 의해서 있는 일이며, 이는 다윗과 맺은 언약을 신실히 이루시는 것에서라고 하는 것에 히스기야가 믿음이 있게 하시는 것이었다. 히스기야는 이 믿음에서 이후 계속해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의존함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13-39장에 전개되는 열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서 하나님은 장차 있을 여호와의 날에 성취될 메시야의 새왕국에 약속되고 있는 새언약 사상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데, 그 근거는 다윗 언약에 있다.
40-66장에서는 하나님의 언약에 나타내신 영원한 언약에 의해서 이스라엘의 구속자가 될 ‘여호와의 종’의 사역으로 말미암은 메시야의 새왕국에 약속되고 있는 새언약 사상을 말씀해 주시고 있다. 그 첫 장인 40장은 선지자 이사야가 39장에서 히스기야왕 때 그가 병들어 다 죽게 되었으나 건강을 회복했다는 소식을 들은 바벨론 왕인 발라단의 아들 므로닥발라단이 사절단을 보내 축하를 하였을 때 히스기야왕이 그들에게 보여준 선왕들이 이날에 이르기까지 쌓아 놓은 왕궁의 보물들이 장차 바벨론으로 실려 가고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며, 히스기야가 낳은 아들들 가운데서도 포로가 되어 바벨론 왕궁으로 끌려갈 것이며, 이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될 것임을 예언하고 히스기야는 그 사실을 받아들임에 있었던데 따라서 예루살렘에서 잡혀온 백성들이 있게 되는데, 그들에게 전해주게 하시는 말씀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사하셨음과 그들을 원수들에게 사로잡혀 포로된 것에서 해방시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성전으로 가실 길을 닦아 놓게 하신 그 길을 따라 영광스럽게 오실 때 이를 보는 모든 사람이 크게 기뻐할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41-48장에서 바사 왕 고레스(Cyrus Ⅱ, B.C. 559-529)를 ‘여호와의 종’으로 내세워 이스라엘을 포로로 삼은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바벨론으로부터 떠나게 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함으로써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을 예언하게 하신다.5) 바벨론이 고레스에게 멸망할 때에 바벨론이 섬긴 신인 우상 벨도 무릎을 끓고 그 아들 느보도 앞으로 거꾸러져 무너졌습니다. 이들을 섬긴 제사장들은 자신들이 섬기던 신들을 메고 가는 무거운 짐이 되었다. 이들이 섬긴 신들 그 누구도 이들을 건져낼 수가 없었으며, 이들과 함께 포로가 되어 끌려갈 뿐이었다. 그러나 고레스왕에 의해 바벨론에서 해방된 야곱의 후손들은 그들이 하나님을 업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업고 갈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서 업고 안고 있었던 자들로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려갈 때도 그들을 품어 그리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품속에서 우상은 결코 자신들을 구원하지 못하며, 여호와이신 하나님만이 참된 신으로서 그 어느 우상도 견줄 수 없을 것임을 곰곰이 생각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있는 것이 ‘제1 여호와의 종의 노래’이며, 이것에서 제1의 출애굽 사건과의 연결에서 보게 될 제2의 출애굽 사건이 예언되고 있다. 바사왕 고레스에 의해 행하시게 될 이 제2의 출애굽 사건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포로 되어 있는 야굽의 후손을 위해 작정하고 그 준비에 있어 오시는 하나님의 ‘새 일’이다.
49장에서는 ‘제2 여호와의 종의 노래’가 펼쳐지는데, 여기서의‘여호와의 종’은‘이사야’와‘이스라엘’을 지칭한다. 그리고 50장에서의‘제3의 여호와의 종의 노래’에서는‘이사야’자신이‘여호와의 종’으로 말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지막인 52장 13절-53장 12절에서의‘제4의 여호와의 종의 노래’에 이르러서는‘메시야’를 가리킨다. 이 모두를‘나의 종/여호와의 종’이라고 통일되게 부르는 것은‘그 종’이 하나님이 시키는 일을 다 할 메시야와 하나님의 택하심을 따라 부르심을 받아 그 메시야가 하는 일을 맡아 수행하는 메시야적 인물이기 때문이다.‘여호와의 종의 노래’는 여호와이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메시야가 수행할 것을 찬양하는 것인데, 그 노래의 마지막인‘제4의 여호와의 종의 노래’에 이르러 고난 받는 여호와의 종인 메시야가 말해지기까지 앞서에 나오는‘여호와의 종의 노래(1-3)’에서는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을 맡아 수행할 것에서 등장시키고 있는 ‘메시야적 인물’이다. 메시야적 인물은 그가 메시야가 아니다. 따라서 그가 행하는 일은 메시야가 행하시는 구원 사역 그 자체가 아니다. 그는 단지 메시야가 등장하여 메시야의 구원 사역을 행하실 때까지 한시적으로 메시야가 하실 일을 맡아 수행하는‘의로우신 여호와의 도구’로 사용되게 된다. 그래서 메시야가 하는 일을 모토(motto)로 하여서 임무를 맡아 수행 하는 자로서‘메시야적 인물’로 말해진다. 하나님께서는‘제1의 여호와의 종의 노래’에서부터‘제3의 여호와의 종의 노래’에서 하나님에 의하여 사용되고 있는‘여호와의 종’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셨다. 그것은 세계 만민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정하신 위대한 계획이다. 하나님은 이를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주신 땅으로 올라오게 하여 그 땅을 차지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세계를 구현하여 나가실 것에서 모세의 인도에 의해 있게 하신‘출애굽 사건’을 이미지로 하여 바벨론에 사로잡혀 있어 포로 되어 있는 야곱의 후손, 곧 이스라엘을 값없이 속량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는‘제2의 출애굽 사건’, 곧‘출바벨론’을 바사왕 고레스를 사용하여 행하실 것을 예언하여 말씀하며, 이‘제2의 출애굽 사건’의 실현에 있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나님은 온 세계에 주인이심을 선양하여 세계 만민을 주 하나님에게로 나아오게 하여 하나님을 경외할 것에 있게 할 것에서 마지막 출애굽 사건이 될‘제3의 출애굽 사건’, 곧‘출세계’를 일으키실 종말론적인 출애굽 사건의 예언을 주시는 것을 통해서 온 세상의 미래를 희망차게 이끌고 가실 것을 말씀하신다.‘여호와의 종의 노래’의‘여호와의 종’에서 나타나게 되는 메시야는 그 미래를 펼쳐나가게 될 구원자로서 온 세상의 중심이다. 이 메시야의 사역에 의한 하나님의 언약적 구속사로 세상의 판도가 예언되고 있는 것이‘여호와의 종의 노래’이후 66장에까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이사야서에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선지자 언약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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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지자 이사야의 죽음에 대한 역사적 흔적을 가경‘이사야의 순교’라는 책에서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이사야는 므낫세 왕 시대에 죽음을 당한 것으로 기록한다. 므낫네 왕이 선지자들을 죽이도록 명령했고, 이사야는 어느 시골 마을 입구에 있는 고목나무 속에 피해 있었으나, 이것을 본 거짓 선지자 벨리알이 므낫세의 군사에게 고발하여 군사들이 이사야가 숨은 나무를 통째로 톱으로 썰어 이사야를 죽였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11장 37절에서“톱으로 켜”서 죽임을 당한 자를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2) 남왕국과 북왕국으로 분단된 이스라엘 왕국은 먼저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침공을 받아 B,C. 722년에 멸망하고, 남왕국 유다는 바벨론의 세 차례에 걸친 침공(B.C. 606, 597, 586)을 받고 멸망함으로써 완전히 멸망하였다. 바벨론 포로생활은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함으로써 바벨론으로 잡혀간 포로들의 바벨론 포로기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그 기간은 바벨론의 1차 침공으로 포로(대표적인 포로는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이다)로 끌려간 때부터 시작하여서 바벨론의 계속된 2차(대표적인 포로는 에스겔이다), 3차 침공에 걸쳐 각각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고, B.C. 536에 바벨론을 멸망시킨 바사<페르시아>왕 고레스에 의해 귀환명령이 떨어짐으로서 비로소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해방되어 귀환하까지의 70년이다.
3) (1) 사람들이 ‘여호와의 종’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연구하게 하는데 공헌을 한 주목 할 만 책이 1892년에 출판되었다. 바젤 신학교수인 둠(Bernhard Duhm, 1847-1928)이 쓴 주석 ‘이사야서’(Bernhard Duhm, Das Buch Jesaia(HKAT 3.1;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892)이다. 이 책의 출간으로 이사야서 연구에는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둠은 이 주석에서 이사야서를 세 부분으로 구분하여 1-39장은 예루살렘에서 활동한 주전 8세기의 이사야가 기록하였으나, 40-55장은 유명한 ‘종’의 구절을 제외하고는 바벨론이 아닌 레바논이나 북뵈니게에서 주전 540년경에 살았던 한 사람이 기록하였으며, 55-66장은 느헤미야가 활동한 시기 바로 전에 아마도 예루살렘에서 살았던 어떤 사람에 의해서 구성되었다고 발표하면서 이 무명의 저자를 둠은 ‘제3이사야’로 지정하였다. 그럼으로써 지금까지의 한 권으로서의 이사야서와도 구분될 뿐만 아니라, 이전에 가져온 이사야를 1-39장, 40-66장으로 구분하였던 것과도 확연하게 다른 것으로서 이사야를 1-39장으로의 제1이사야와 40-55장으로서의 제2이사야(Deutero-Isaiah), 그리고 56-66장으로서의 제3이사야(Trito-Isaiah) 셋으로 구분하였다. 둠이 이사야서를 이처럼 세 부분으로 구분하여 분류하는 것은 이사야 40장에서 56장 8절은 B. C. 540년경에 쓰인 제2이사야(Deutero-Isaiah)이며, 이사야 56장 9절에서 66장은 느헤미야 시대 직전에 쓰인 제3이사야(Trito-Isaiah)라고 주장하면서 1-39장까지를 선지자 이사야를 제1이사야 저자로 보는 까닭이다. 둠의 이러한 주장은 이후 이사야에 지속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갖게 되어서 더욱 끊임없는 연구의 기초를 이루었으나 그 대부분은 둠의 주장을 지지하여 이사야의 고귀한 저작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한 권의 이사야와는 다르게, 그리고 이전에 이사야를 1-39장, 40-66장 둘로 구분하였던 것과도 확연히 다르게 이사야서를 1-39장, 40-55장, 56-66장 3부로 구분되는 것으로 분류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으로서 둠의 이사야의 구분에 의한 분류는 이사야 사상 연구에서 지배적인 관점이 되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그 이전에 있어온 2세기경의 모세 벤 사무엘 이븐 게카틸라(Moses ben Samuel Ibn-Gekatilla)가 이사야서를 1-39장, 40-66장으로 구분하여 전반부는 이사야 자신이 기록했으나, 이사야서의 후반부는 제2성전 시대 때에 기록된 것이라고 주장한 이래, 12세기 중세시대 때 유대인 주석가인 이븐 에즈라(Ibn Ezra)가 이사야 40-66장은 주전 8세기의 선지자인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아닌 그보다 훨씬 후대의 다른 사람이 기록했다고 주장하고, 1775년에 주장한 되덜라인(J. C. Döderlein)의 견해를 따르는 자들은 이사야서를 1-39장과 40-66장이 두 개의 다른 저작이라는 제안을 하고 1789년에 출간한 그의 이사야 주석에서 이사야 40-66장이 이사야가 아닌 다른 제2의 저자에 의해서 되어졌다고 주장함으로써 이사야의 단일 저작성을 부인한 것과 함께 선지자 이사야 한 사람에 의하여 기록된 단일 저자라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Edward J. Young)을 비롯한 학자들에 의해서,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러서의 구약학자들이 갖는 이사야서에 대한 이해의 흐름은 이사야서를 제1이사야서와 제2이사야서 두 부분으로, 그리고 제1이사야서, 제2이사야서, 제3이사야서 세 부분으로 구분하여 분류하는 것에 반대하며 한권의 통일된 이사야서라는 견해에 의하여 이사야서가 단일 저자, 단일 저작임을 말한다.
(2) 둠(Duhm)은 이사야서에서 ‘종의 노래’들을 네 편으로 선정하여 독립된 부분으로 분류해낸 최초의 학자이다. 둠에 의해 이사야서에서 ‘여호와의 종의 노래’로 제목이 붙여지는 사대시는 42:1-4; 49:1-6; 50:4-9; 52:13-53:12 이다. 그러나 다수의 학자들은 전통적으로 42:1-9, 49:1-13; 50:4-9; 52:13-53:12으로의 구분을 지지하고 있다. 반면에 모겐스턴(Morgenstern)은 42:1-4; 49:5-7; 50:4-10; 53:1-12라고 본다. 모빙켈(Mowinckel)은 42:1-7; 49:1-6; 50:4-11; 52:13-53:12로 구분한다. 그런가 하면, 구약학자들 중에는 ‘여호와의 종의 노래’를 네 곳(42:1-9, 49:1-13; 50:4-9; 52:13-53:12) 이상으로 보기도 하는데 크리스홀름(Robert B. Chisholm)은 61:1-4도 ‘여호와의 종의 노래’라고 본다. 그레스만(Gressmann)은 ‘종의 노래’를 42:1-4; 42:5-9; 49:1-6; 49:6; 49:8-13; 50:4-10; 52:13-53:12 일곱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4) 다윗과 맺은 언약에 의해 다윗 왕조의 왕권을 행사하실 왕에 대해 묘사되고 있는 표현인 뿌리에서 나오는 ‘한 싹’과 그루터기에서 뻗어 나오는 ‘한 가지’의 이미지는 예레미야서와 스가랴서에서도 각각 보게 된다. (1) 예레미야 23:5, 33:1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2) 스가랴 3:8, 6:12.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들이라 내가 내 종 싹을 나게 하리라”,“말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5) 이사야 42장 1-9절, 44장 28절인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알리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에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에서의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으로 말씀해 주시고 있는 ‘여호와의 종’은 바사왕 고레스를 지칭한다. 그 고레스를 하나님께서는 ‘내 목자’라고 하면서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라고 말씀하셨다. 이 고레스는 ‘제1 여호와의 종의 노래’로 말해지고 있는 곳에서 ‘여호와의 종’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이방 나라의 왕인 고레스를 이처럼 여호와의 종으로 지칭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하나님의 백성의 목자로 삼고서 하나님께서 하려는 일을 그가 실행하여 예루살렘을 재건하고 성전을 다시 세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그는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에 의해서 하나님에 의하여 준비된 사람으로 하나님이 세우신 계획을 실현함으로써 그에 대하여 가진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것에서 하나님의 백성 앞에는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하나님의 구원자로 등장하게 된다. 그런 까닭에 그는 이방 나라의 왕으로서 ‘메시야적인 여호와의 종’의 사명을 수행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이 그와 함께 하시는 것에서 고레스왕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종으로 있다. 고레스왕은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오시는 메시야가 아니지만, 하나님에 의해 주어지는 임무를 통해 메시야가 오실 때까지 메시야가 하실 일을 맡아 수행하는 것에서 그가 한 일과 관련하여 메시야적인 여호와의 종으로 불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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