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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죽음 이후 부활하시기까지의 3일간의 행적에 대하여

글쓴이 : 이천우 목사(부천개혁교회)

 

베드로전서 318-22, 46/ 3:18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20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21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22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4:6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우리말 성경에서는 사도신경을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내가 믿사오며라고 시작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음을 당하신 고난과 함께 장사 지낸 바 된 후 제3일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신앙고백 합니다. 그리고 이 신앙고백은 부활, 승천, 심판을 위한 재림을, 그리고 성령에 의한 교회와 성도의 교통, 죄 사함과 부활과 영원히 사는 것에 대하여 갖습니다.

 

그런데 우리말 사도신경에는 없으나 영어 및 라틴 사도신경에는 있으며, 초기의 사도신경에는 있어온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장사지내시고 음부(지옥)에 내려가셨다고 하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영어 사도신경을 보면, 죽으신 후 '지옥에 가셨다'라는 문구가 들어 있습니다. "Suffered under Pontius Pilate; was crucified, dead and buried: 'He descended into hell': The third day He rose again from the dead. He ascended into heaven."라고 되어 있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시고, 그리고 장사되셨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지옥[또는 음부]으로 내려가셨다': 사흘만에 그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그는 하늘에 오르셨다."라고 되어 있어서 'He descended into hell'(그는 지옥에 내려가셨다)라는 지옥[음부] 강하(地獄降下)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말 사도신경에는 이 부분이 빠져 있는 것입니다.

 

벌콥에 의하면 교회사의 초기에는 예수님의 지옥 강하에 대한 고백이 보편적으로 사도신경에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아퀼레이안(Aquileian)형의 사도신경(390.A.D)에 처음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로마와 근동의 다른 형의 사도신경들은 예수님께서 지옥[음부]에 내려가신 것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그리스도의 장사를 다루면서 여기에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내려가심의 의미가 포함되었다고 여긴 까닭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내려가심을 언급하면서 장사 지내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것들도 있습니다. 그러다 후에 로마형의 사도신경에서 장사를 언급하고 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진술이 첨가되었습니다.

 

신앙고백서에서 이 문구가 있어온 것으로 인해서 그동안 교회사에서는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신 예수께서 장사 지낸 바 된 후 죽은 자 가운데서 삼일 만에 부활하시기까지의 기간인 3일 동안에 어디에 계셨었는가? 하는 궁금증을 가져왔습니다. ,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시고 장사[장례]를 치른 후 무덤에 묻히신 3일간의 행적에 관한 것입니다. 그래서 무덤에 묻히신 3일 동안 예수님은 어디에 계셨는가? 하는 것에 의문을 품고 질문을 해왔습니다.

 

사도신경의 고백적인 순서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본디오 빌라도 총독의 치하에서 십자가 못 박히는 고난을 당하시고 마침내 죽음을 당하셨으며, 이런 예수님을 장사 지내고 돌로 된 무덤에 안장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무덤의 문을 큰 돌로 막아 굳게 닫아 놓았습니다. 이렇게 장사 지낸 바 된 예수님은 그렇지만 죽음에 갇혀 있지를 않고 죽은 자 가운데서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 부활까지의 3일간을 사도신경에서는 '지옥에 내려가셨다'라고 신앙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죽음을 당하신 이후에 반드시 '지옥에 내려가셨다'라고만 되어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반드시 '지옥에 내려가셨다'라고만 볼 수는 없는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는 좌우편에 흉악범들도 함께 십자가에 달리는 형벌을 받았는데 이 중 한편의 강도가 예수님에 대해 가진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이야기하고 이런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23:4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오후 3시에 운명하셨습니다.

 

, 우리는 이 내용을 사도신경과 대조하여서 볼 때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요? 사도신경에서 예수님의 지옥 강하를 신앙고백하고 있는 내용과 성경에서 죽음을 당하신 그날에 낙원에 계실 것을 말씀하신 것은 서로 맞지 않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둘 중에서 어느 하나는 틀리고 있는 것일텐데요.

 

과연 그럴까요? 만일 그렇다면 어느 쪽에 손을 들어주겠습니까? 아마도, 당연히 복음서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그러니까 성경일 것입니다.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까? 반면에 사도신경은 성경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구속사적인 신앙을 고백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구요.

 

그런데 말입니다. 성경에서도 예수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것을 말씀하여 주는 듯한 구절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319절입니다.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런가 하면 46절에서도 예수님께서 지옥에 내려가신 듯한 뉘앙스를 품고 있는 말씀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겐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

 

그렇다면, 사도신경에서 신앙고백하고 있는 대로 예수께서 지옥에 내려가신 것이 너무나도 분명하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일까요?

 

이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갖기 위해서 먼저 베드로전서에서 언급되고 있는 것의 의미부터 보도록 하겠습니다. 319절에서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보자는 말입니다.

 

베드로가 여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은 지금 그는 성도들에게 선한 양심을 가져야 할 것을 권면하는 중에 한 말입니다. (1) 그는 1-6절에서 아내가 남편에 대하여 가질 자세에 대하여 설명하였습니다. 그것은 아내는 남편에게 '순복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자가 근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은 외모가 아니었습니다. 여자의 존재성은 외모를 꾸미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인격에 있는 것인데 순복하는 데서 아름다움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베드로는 아브라함의 아내가 남편을 ''라고 칭하며 복종한 것을 들어서 설명을 하였습니다. (2) 그리고 7절에서는 남편이 그와 같이 순복에 있는 아내에 대하여 가질 자세를 말하였는데, 곧 선한 양심입니다. 그는 그 권면으로 지식을 따라 아내와 동거하라고 하였으며, 여자를 귀히 여기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권면한 것은 인격은 어느 한쪽에만 요구되는 일방적이 것이 아니기에, 그리고 여자는 남자보다 더 연약한 그릇이기에 아내가 남편에게 순복하듯이 남편은 아내를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에서입니다. (3) 그리고 8-15절에서는 대인관계 면에서 형제 사랑을 권면하였는데 열심히 선을 행하라고 하였습니다. (4) 그리고 또한 16-22절에서는 선한 양심을 가지라고 권면하고 있는 그 '선한 양심'이 어떻게 있게 되었는가를 설명하였습니다.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서도 고난을 받을 수가 있는데, 이는 의를 위하여서 받는 것으로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서 그리스도의 선함과 고난 받음을 들어 설명하였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인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한 선한 일을 하셨으나 그 자신은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여 죽으시는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이 고난이 우리의 표본으로서 우리 또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그 선한 양심에 의하여 고난도 받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와 같이 권면하는 것은 선행한 그 선행으로 고난을 받으라는 것에서가 아니라, 선행하는 그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으로, 즉 그리스도를 인하여 고난을 받음에 있는 그리스도가 받으신 고난에 그를 따르는 믿음에 있는 제자들 또한 함께 하고 있다는 것에서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님께서 산상설교에서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에 따른 것입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5:10-12). 이에 사도 바울은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8:17-18) 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나온 이야기가 바로 19절에서의 "그리스도는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셨으나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아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말한 것이 20절인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에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방주에서 나와 물로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인데 겨우 여덟 명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46절에서 "죽은 자들"이 언급되고 있는데, 319절에서 말하고 있는 '옥에 있는 영들'이 바로 이들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319절에서의 '옥에 있는 영들'46절에서 설명되고 있는 '죽은 자들'이니, 과거의 구약 시대 때에 죽은 사람들이며, 또한 옛날에 죽은 모든 사람들을 말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진노에 의해 심판 아래 놓여져 있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옥에 있는 영들'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구원을 얻기 전까지에 놓여 있던 모든 죄의 사람, 곧 하나님께 범죄하여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 있는 사람들을 총칭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또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고 하시면서 '노아의 날 방주에서 구원 얻은 여덟 명'을 든 것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 있던 죄인된 인류에게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여 주심으로, 그래서 여덟 명인 이들만큼은 하나님께서 전하여 주시는 복음을 듣고서 그 복음에 의해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소망에 의해 심판에서 건짐을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처럼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 있는 모든 죄인된 인류에게 구원의 전파인 복음이라고 하는 것을 선언하여서 알게 해 주고 있습니다. 이 복음에 의하여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모든 죄인들이 노아의 여덟 식구처럼 물에서 건짐, 곧 구원을 받습니다. 이러한 것을 마치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후 제3일에 부활하시기까지의 3일간을 지옥에 계신 것으로 말하면서, 이 동안에 예수께서 무엇을 하셨는가 하면 지옥에 있는 죽은 자들의 영(영혼)에게 전도하셨다고 말하는 형편에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321절에서 하고 있는 말이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선한 양심'에 대하여 말하였습니다. 물은 노아 때의 홍수로 있는 하나님의 진노에 의해 모든 사람이 수장되어 멸망당하는 심판의 의미를 갖고 있지만 노아의 여덟 식구에게 있어서 물은 전혀 다른 깊은 의미를 갖고 있는데 물에서 보이고 있는 심판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소망을 가진 자기들에게 건짐을 준 구원의 표였습니다.

 

그것처럼 오늘날의 우리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으니 이것을 믿음을 가지고서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바라보아 소망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는 소망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한몸을 이루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는 소망에 의해 하나님과 연합한 자가 됨으로 구원을 받은 노아의 여덟 식구처럼 구원을 받는 것이지 달리 다른 방법이 있지 않습니다. 이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선한 양심이 바로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소망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선한 양심에 의하여서 우리들이 아내된 자로서 또 남편된 자로서 그리고 이웃된 자로서 선하게 살아가야 하며, 의를 위하여서 살아가야 할 것을 말하면서 그러다가 고난이 주어지면 선한 양심이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는 가운데 기꺼이 받을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하나의 몸으로 있듯이,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 하나 됨에 있는 특징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분리되어 떨어져 있어서 그리스도 없이 나만으로 살아가는 자로 있어선 안 될 것입니다.

 

이렇게 베드로가 말한 의미를 이해하면, 그가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셨다'가 죽음을 당하신 예수님께서 지옥에 내려가 그곳에서 계신 3일간에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듯이 또한 46절의 의미도 예수께서 지옥에 내려가 죽은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것이 아님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베드로전서 319절과 46절의 구절 가지고는 예수님의 '지옥 강하'를 운운할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사도신경에서의 예수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곧 실제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것을 두고서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에서인지를 알면 될 것입니다.

 

사도신경의 예수님의 '지옥 강하'에 대해서는 영문에는 장사지내셨다는 'and buried'란 말 뒤에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He descended into Hell'가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죽으신 이후에는 "옥에 내려가셨는데 그 옥은 지옥이다"라고 말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이후에 부활하시기 전까지 3일간에 지옥에 내려가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베드로전서 319절과 연계해서 지옥에 내려가신 예수님은 그곳에 있는 영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죽음을 통해 죄에 대해 승리하셨음을 선포하셨다는 견해를 갖습니다.

 

그렇지만 앞서 언급하였듯이 베드로전서 319절은 죽음을 당하신 예수님의 지옥 강하와는 상관없는 다른 의미에서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사실 성경 어디에서도 예수님의 지옥 강하를 말씀하시는 곳이 없습니다. 혹자는 베드로전서 319절 및 46절과 함께 에베소서 49절의 "올라가셨다 하셨은즉 땅 아랫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를 지옥 강하를 말씀하여 주는 것으로 말하기도 합니다만, 이 구절은 하늘의 가장 높은 곳에 계시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땅의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오셨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지옥 강하를 말씀해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몸을 입으시는 낮아지신 상태에 처하신 비하의 의미를 담고 있는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어서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10)라고 말씀하여서 땅의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오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제 다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셨다고 승귀에 관하여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독 사도신경에서만은 예수님의 지옥 강하의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신경을 교리적으로 해설한 교리문답서인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서도 예수님의 지옥 강하를 다루고 있습니다.

 

44. "Why is there added: He descended into hell?."

. "In my greatest sorrows and temptations I may be assured and comforted that my Lord Jesus Christ, by His unspeakable anguish, pain, terror, and agony, which He endured throughout all His sufferings but especially on the cross, has delivered me from the anguish and torment of hell.

 

44. " '그는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말이 왜 첨가되어 있습니까?."

: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전체 고난을 통하여, 특별히 십자가상의 고난을 통하여 겪으셨던, 말할 수 없는 고민과 고통과 공포와 고뇌로 말미암아 지옥의 고통과 고뇌로부터 나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나의 가장 큰 슬픔과 시험 속에서 나는 확신하고 위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지옥 강하를 다루면서 이를 예수님 자신이 지옥에 내려가신 것으로 해석하고 이를 설명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우리가 주목해야 합니다. 지옥은 예컨대 요한계시록 2014절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불못'으로, 그리고 218절에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이라는 표현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옥이 하나님께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나 대적하는 죄인이요 원수된 자들을 버린 장소로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가 쏟아지는 장소라고 하는 것을 설명해 줍니다. 그런 지옥은 죄인이 영원히 죽음에 처하는 곳인 저주받은 비참한 곳입니다. 사도신경을 해설하고 있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예수님께서 죽음에 이른 저주의 상태에 처해진 것이 바로 이렇다고 하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도 신경을 시간적으로 일어난 사건의 순서대로 읽는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은 후에는 당연히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나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은 예수님의 지옥 강하 내용을 빌라도 총독의 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셨는데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고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시고 그리고서 지옥 강하가 있었다는 시간적인 순서로 발생한 사건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당하신 그 즉시 지옥이 아닌 한편 강도에게 말씀하신 곳인 낙원으로 가셨습니다. 낙원은 천국, 하나님의 나라, 천당과 동의적인 개념인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계신 곳입니다. 그런데 사도신경에서 그리고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에서 예수님의 죽음과 장사지내심에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내용을 첨가하고 있는 것은 지옥이란 장소적인 개념에서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고 죽음을 당하시고 장사 지내신 이것이 갖는, 그래서 여기에 있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의 성격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상태에서 운명하실 때까지 고통에 의한 신음으로 계신 동안은 6시간이었는데, 이 시간에 죄인인 모든 인류가 받을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그 한 몸으로 다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인 유명한 가상칠언이 있는데,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가 있습니다. 이 뜻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는 것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예수님께서 자신을 죽음에 처하게 하시는 하늘의 아버지께 한없는 원망으로 불평하고 있는 듯이 여겨집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보고자 몸부림치는, 그래서 "나를 이 죽음에 이르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세요!. 나를 살려 주세요!"하는 처절한 몸부림의 외침인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 외침은 죄인의 죄값을 대신 담당하고 직접 헌신제사로 드려지는 아들에 대하여서 비록 자신이 아들일지라도 죄 값을 물으며 고개를 돌려 철저하게 외면하시는 하나님의 버리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이실지라도 죄에 대한 진노와 저주를 쏟으셨습니다. 온 인류에게 쏟을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이 외침을 통하여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이실지라도 죄를 심판하시는 진노와 저주를 내리시는 것을 보느냐? 하물며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가 피해갈 수 있을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도무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지금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독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다 쏟아 부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아들로서 하늘의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하시는 일을 순종으로 받아들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가 지속되고 있는 동안 운명하시기 직전인 3시간에는 기이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운명하시기 전의 3시간은 이전의 상황과는 전혀 달랐는데 그것은 그 시간에 태양은 빛을 잃었으며 어둠이 임한 것입니다. 어둠이 세상에 덮였습니다. 이런 기이한 일이 일어난 것은 하나님께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신 것에 대한 상징의 극치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의 외침을 거절하셨으며 아들을 떠나셨습니다. 죽음의 권세는 예수님을 점차 죄여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운명하셨습니다. 운명하신 예수님의 몸은 아리마대 사람인 요셉에 의해서 깨끗하고 고운 베로 싸여서 바위를 파서 만든 자기의 새 무덤에 모시고 입구를 큰 돌로 막았습니다. 안식 후 첫날 이른 새벽이 이를 때까지 예수님의 시신은 그렇게 안장되어 있었습니다. 이 동안에는 사단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 듯이 보입니다. 이제는 세상에 참 생명의 소망이 없는 듯이 보입니다. 그렇게 세상은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약속하신 3일째 날에 예수님은 여러 차례 제자들에게 예고하셨던 대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을 하신 것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복음은 몇 몇의 여인들과 제자들에게 전해졌으며,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그리고 온 땅 끝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복음을 믿는 자들은 이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생명의 복을 누리는 기쁨으로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도신경에서의 예수님의 지옥 강하 내용과 이에 대한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은 예수님께서 문자적인 지옥[장소적인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것을 알게 해 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본디오 빌라도 총독의 치하에서 받은 고난에 의해서 십자가에서 당하신 죽음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칼빈의 기독교 강요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기독교 강요 제2168-12항에서 그리스도께서 음부[지옥]로 내려가심에 대하여 설명하였는데 "우리가 그가 음부[지옥]에 내려간 사실도 빼서는 안 되는 것은 그것이 속죄의 성취에 적지 않은 의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8)라고 의미를 두면서 이에 대하여 기술해 나갔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옥의 고초를 맛보셨다는 것이요 이는 속죄를 위한 형벌적 수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10항에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진노로서 악한 자들에게 내린 죽음을 그가 당하셨으니 만큼 그가 지옥에까지 내려간다고 한들 무엇이 이상할 것인가?"라고 하였습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예수님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여서 가르칩니다.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전체 고난을 통하여, 특별히 십자가상의 고난을 통하여 겪으셨던, 말할 수 없는 고민과 고통과 공포와 고뇌로 말미암아 지옥의 고통과 고뇌로부터 나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나의 가장 큰 슬픔과 시험 속에서 나는 확신하고 위로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설명하여 주기 위해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는 제44문에 "그는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말이 왜 첨가되어 있습니까?라고 묻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지옥 강하가 갖는 의미에 있어서 한 가지 더 이해하고 있어야 할 것이 있음을 말함으로 끝맺고자 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옥 강하는 예수님께서 죽음의 상태의 가장 낮고 깊은 비하에 들어가셨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것도 함께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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