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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교제가 무엇인가
‘성도의 교제’가 무엇인가?
임경근 목사(다우리교회)
사도신경 가운데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한다. 성도가 서로 교제하는 것, 곧 사귀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일게다. 그런데 이것은 라틴어 원문 ‘콤뮤니오렘 상토룸’(communiorem sanctorum)의 의역인데 사실은 오역인 셈이다. 왜냐하면 이 번역은 ‘성도의 교제’의 한 면인 ‘성도 간의 사귐’만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직역이 아닌 의역이 만들어 내는 전형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짧은 몇 개의 명사로 의미를 나타내야 하는 경우 의역은 오역을 낳기 쉽다. 특히 성경 전체를 짧은 사도신경으로 나타낸 경우는 더 그렇다. 다행히 새로운 사도신경 번역은 이것을 "성도의 교제"로 올바로 번역했다.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성도의 교제’를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교회에서 성도의 교제 혹은 성도의 교통은 서로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것으로만 이해한다. ‘구역모임’이나 혹은 ‘학생들의 소그룹’, ‘성경공부 모임’ 같은 것들의 핵심은 사실상 사귐이 그 중심에 있다. 구역모임 1부는 요식행위로 그치고 정말 중요한 시간은 2부, 소위 교제의 시간이다. 맛있는 음식과 더불어 온갖 관심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어쩌면 바로 이 사귐이 신앙생활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사람들이 서로 자신을 내어 놓고 마음을 나누고 소통하는 것을 성도의 교제로 이해한다.
한국 사회가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도시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도시 생활의 외로움을 교회에서 찾을 수 있었던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교회는 좋은 교제의 장소였다. 학창 시절에 불신부모들은 교회는 ‘연애하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딸이 교회에 나가는 것을 싫어했다. 교회에 가면 사람을 사귈 수 있는 곳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다보니 교회는 수직적 하나님과의 교제보다는 수평적 성도들의 교제에 그 우선순위를 빼앗기고 있다. 교회는 성장하기 위해 수평적 교제를 강조하고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 방법이야 말로 사람들을 교회로 이끄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인식되었다. 지금도 이 성도의 교제는 좋은 전도방법으로 인식되고 있다.
어쩌면 교회는 복음의 본질인 하나님의 복음을 노골적으로 제시하는 설교를 미련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설교도 인간관계를 다루는 주제들이 많아졌다. 내적치유, 관계와 사랑의 기술 같은 것들이 설교의 주요 주제가 되었다. 정말 중요한 복음의 본질을 놓치기 일쑤다. 복음만을 전하는 교회는 딱딱하고 메마르고 재미없어 인기가 없다. 성도들의 귀를 기쁘게 하는 사랑의 관계에 대한 설교가 주를 이룬다. 이런 수평적 성도의 교제가 강조되지 않는 교회를 성도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성도의 교제가 부족하다느니, 사랑이 없다느니 하며 떠나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성도의 교제’가 그런 것인가? 성도의 교제의 본질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설명하고 있는 ‘성도의 교제’를 보자.
55문: "성도의 교제"를 당신은 어떻게 이해합니까?
답: 첫째, 신자는 모두 또한 각각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주 그리스도와 교제하며, 그의 모든 부요와 은사에 참여합니다.
둘째, 각 신자는 자기의 은사를 다른 지체의 유익과 복을 위하여 기꺼이 그리고 즐거이 사용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성도의 교제에 바른 의미에 대해 분명하게 정리한다. 성도의 교제는 일차적으로 하늘에 계신 우리 주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만들어 놓으신 모든 부요, 곧 '보물'과 은사, 곧 '선물'에 참여하는 것이 성도의 교제이다. 대표적인 성도의 교제는 성찬이다. 성찬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베풀어 주시는 천국 만찬이다. 바로 이 성찬에서 성도와 그리스도와의 진정한 교제, 즉 코이노니아(koinonia)가 이루어진다. 성도의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잘 하기 위해서는 성찬을 가능한 자주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현 한국 교회는 성찬식을 하긴 하지만 이를 통한 성도의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이루고 있을까?
두 번째 차원의 성도의 교제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성도는 성도 상호간에 교제를 할 수 밖에 없다. 수직적 교제가 있는 경우, 자연스레 수평적 교제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것조차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성도의 교제이다. ‘성도의 교제’는 남이 나를 위해 사랑을 주고 관심을 주는 것을 기대하고 요구하는 차원이 아니다. 올바른 성도의 교제는 ‘자기의 은사를 다른 지체의 유익과 복을 위하여 기꺼이 그리고 즐거이 사용할 의무’를 행하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섬기는 차원의 성도의 교제를 말한다.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불평하거나, 이 교회는 사랑이 없다고 불평하는 차원의 성도의 교제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화를 발견하고 그 보물에 참여하는 성도, 곧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잘 하는 성도는 다른 사람을 향한 성도의 교제로 자연스레 나아간다. 그것은 받으려는 차원의 교제가 아니라, 받은 은사를 가지고 섬기고 돕는 차원의 교제이다. 이런 차원의 성도의 교제가 교회에 풍성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익숙한 성도의 교제가 아니라, 바른 의미의 성도의 교제가 교회에 어떻게 가르쳐지고 적용되어야 할지 기도하며 적용해 가야 하리라.
- 실천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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