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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예배론 특강(개혁주의 교회의 예전에 대한 이해)
2017년 예배론 특강
개혁주의 교회의 예전에 대한 이해
< 이차식 목사, 덕일교회 >
교회 예배 시에 행하는 여러 가지 일들 곧 찬송, 성경낭독, 기도, 설교와 같은 것을 ‘예전’이라고 한다. 이 ‘예전’ 순서에 대해 성경에는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을지라도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 예배하도록 주신 방식과 신약 성경의 교회가 행했던 방식과 참된 개혁주의 교회들의 예배 순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교회가 개혁교회로서 자신을 드러낼 때 예전으로서 표하게 된다. 16세기 우루시누스는 하이델베르크 주의 날 제35주일에서 언약의 십계명 중 제2계명을 설명할 때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제2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어떠한 형태로든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지 말고 말씀을 통하여 명령하신 방법과 다르게 예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2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예배의 방법 문제로 규정한다. 이를테면 제1계명은 ‘누구를 우리가 예배하는가?’라고 한다면 제2계명은 ‘어떻게 우리가 그분께 예배드리는가?’이다.
제2계명에서 부정적인 측면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들을 만드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며 긍정적 측면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 되라는 요구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예배할 수 있도록 지음을 받았다.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이 그를 찬양하고 영광스럽게 하도록 사람을 창조하셨다.
1. 개혁교회의 예배는 성경의 방식을 철저히 따른다
1) 구약
아담과 이브는 완전한 예배 가운데 여호와를 섬겼다. 에덴동산에는 교회, 성경, 그리고 설교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때는 하나님을 친밀하게 알았기 때문이다. 에덴동산에서의 예배 방식은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는 최상의 예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죄에 떨어짐으로 이 예배가 돌연히 중단되었다. 아담의 타락이 여호와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의 특권을 박탈하였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깨뜨려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그 교제를 회복시키셨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죄의 나락으로 떨어진 후에 아담과 이브에게 찾아오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을 주셨다. 여인의 후손에 대한 약속이었다. 우리는 이 약속에서 그분의 선택적 사랑과 주권적 기쁨을 볼 수 있다.
뱀의 후손이 자신들의 기술과 힘을 뽐낼 때(창 4:23), 여인의 후손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하고 교제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창 4: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4:26). 족장들은 이러한 교제를 누리며 살았다. 그들이 유숙할 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에게 물으며 그분에게 제물을 드렸다. 여호와는 그들과 함께 계셨다.
그의 백성과 함께 하는 하나님의 임재는 시내산 성막으로 인해 더욱 가시화되었다. 여호와의 영광이 그의 백성 가운데 충만히 거하신 것이다(출 40:33-38). 이스라엘의 여호와께 예배는 성막 중심(시5:7; 95:6,7; 99:9)이었다. 그분의 은혜로 여호와께서 이 예배를 창시하였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예배순서에 대한 상세한 것들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가 언급할 수 있는 것들은 성막이 여호와께서 보여주신 하늘의 식양대로 지어졌으며 그분이 택하신 곳에서 그분의 방식대로 여호와를 예배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낭독이 있었고 율법에 대한 가르침이 있었다(레 10:11; 말 2:7; 느 8:7,8). 율법이 선언될 때는 그 백성이 일어섰으며(느 8:5, 7), 그들의 손을 들고서 아멘이라고 화답하였으며(대상 16:36) 무릎을 꿇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공예배 중의 몇 요소들은 제물들, 의식들, 찬송 그리고 공적기도가 있다는 것이다(대하 7:5,6; 5:13; 대하 5,6장). 그 백성이 함께 찬송(대상 15,16장)하였으며 여호와의 복의 선언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죄의 타락 후에는 말씀을 통하여 명령하신 방법으로의 예배, 곧 격식이 있는 예배가 있었다. 지성소, 전능한 하나님, 그리고 그의 백성 이스라엘과의 교제는 측량할 수 없는 은혜의 선물이었다. 이 교제는 오직 피흘림을 통하여서만 되어졌다.
2) 신약
우리는 여호와께서 규정하신 대로 예배에 참여하신 우리 주 예수님을 복음서에서 보게 된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눅 4:16).
예수님은 참된 예배를 가르치셨다(눅 4:5-8; 마 23:23-24). 이스라엘의 여호와께 예배는 성막에서 성전으로 발전되며,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모든 성전의 상징적 제도가 성취되었다. 그리스도는 하늘에 오르셨고 교회의 제사장으로서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실 뿐 아니라, 그가 성령을 보내시고, 거룩한 총회와 교회 가운데 임재하신다.
예수님은 구약예배를 성취하셨다(요 4:21-24; 마 27:51).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이후에는 성전은 더 이상 기능이 없다. 이제 우리는 히브리서에서 성전의 제사장의 섬김은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되었으며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우리의 유일한 제사장으로서 사역을 계속하신다고 배운다(히 8,9장).
오늘날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성전에서 제사장이 섬기는 구약에서 유래하였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이 찢어짐(마 27:51)으로 이제 하나님과 직접 만나는 길이 열렸다. 더 이상 동물을 희생할 필요가 없으며 진리와 영으로 예배하도록 부름을 받았다(요 4:24).
여호와의 영광 중에 거하심이 이스라엘에 충만하셨다면, 성령님이 교회에 거하시도록 부어주신 것 때문에 오늘날의 교회는 훨씬 더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모세의 영도 아래에서도 여호와께 예배하는 일에 주의해야 하였다면, 오늘날의 교회는 얼마나 더 하겠는가? 오늘날의 교회는 시내산이나 시온산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예루살렘에 이르게 될 것이다.
여호와께서 거하심은 훨씬 위대하고 강력하며 성령을 부어주심에 있어서도 훨씬 더 한 것이다(고전 3:16; 고후 3:7-11; 히12:22-24). 이것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는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하는 교회로서 얼마나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것인가를 시사한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또한 우리의 예배를 당연시하고 경히 여기지 않도록 경고한다.
이 땅에서의 우리의 예배는 성경 마지막 책에서 펼쳐지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영원한 찬양의 시작이다(계 19:6-7). 성경은 우리의 예전이 종국에는 절정에 이르게 될 것을 보여준다(계 7:11-12).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는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드려져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예배는 구원의 즐거움과 체험을 강조하는 나머지 경외함이 사라지고 있다. 한국 장로교회가 예전에 있어서 참된 개혁주의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 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2. 개혁교회는 예전과 관련한 신앙고백서들과 교회질서를 따른다
1) 벨직신앙고백서
벨직신앙고백서는 교회를 거룩한 총회이며 참된 기독신자들의 모임이라 부른다. 이 거룩한 모임과 총회는 구속받은 자들의 모임이며 이 모임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규정한 대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목적이 있다(벨직신앙고백서 7항, 27항, 32항).
2)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제54문: 거룩한 보편적인 기독교회에 관하여 무엇을 믿습니까?
답: 나는 하나님의 자녀들께서 모든 인류로부터 세초에서 세말에 이르기까지 성령과 말씀을 통하여 참된 믿음의 일치 안에서 영생에로 선택하신 교회를 자기를 위하여 모으시고 보호하시고 보전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제96문: 제2계명에서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말씀을 통하여 명령하신 방법과 다르게 예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98답: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살아있는 말씀 전파를 통해서 자기 백성들이 가르침 받기를 원하십니다.
제99문: 제3계명에서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답: 우리는 오직 두려움과 경외감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사용하여서 바르게 고백하고 기도하고 모든 말씀과 행위로 그분을 찬양하여야 합니다.
제103문 : 하나님께서 제4계명에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 특별히 주일에 내가 부지런히 하나님의 교회에 출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례들을 사용하고 공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며.....
3) 교회 질서
교회가 개혁교회로서 공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때 예배로서 한다. 주님의 교회의 정체성이 가시적으로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예전을 통해서이다. 이 이유 때문에 개혁교회의 질서는 공적예배(52조, 53조, 55조, 56조)를 다룬다. 주의 날에 두 번의 예배를 위하여 회중을 소집해야 하며 매주일 한번은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 요약된 하나님 말씀의 교리를 선포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지켜야 한다(52조).
3. 개혁교회는 언약적 예배를 드린다
예배는 교회생활의 핵심이다. 교회의 색깔과 정체성은 예배의 모습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언약의 하나님은 그의 백성과의 만남과 교제의 기회를 예배를 통하여 허락하신다. 구약의 규칙들과 의식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로부터 하나님의 거룩을 보호하며, 거룩한 하나님의 진노에서 죄된 백성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개혁주의 신앙의 핵심 중 하나는 언약에 대한 신앙이다. 개혁교회의 예배의식의 특성은 언약적 예배의식이다.
예배에는 두 당사자가 있다. 한쪽은 거룩한 하나님이며 다른 한쪽은 회중이다. 이 회중은 부모와 언약의 자녀들이 함께 참여한다. 이 두 당사자의 교류를 위해서 구약에는 제사장이 중매자로서 처신했다. 제사장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언약의 율법을 선언하기도 하며 사람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올린다. 그 속에 충만한 언약적 기쁨이 있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여호와 집에 올라가는 것을 기뻐하였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하는 성전을 사모하였다. 이와 같은 예전을 언약적인 예전이라 한다. 예배의식의 아름다움은 언약적인 고상한 관계를 표현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역동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신약교회 예배는 구약시대 성전예배의 형식을 따라 형성되었다. 신약시대에 목사가 이 예배의 중재자로 등장한다. 목사는 더 이상 제사장은 아니다. 그러나 제사장적 기능을 할 뿐이다. 언약의 말씀을 선포하고 성경을 봉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축복을 할 때 하나님의 입을 대신한다. 또 인간 편에서는 예배로의 부름, 기도를 드릴 때에 교회 회중의 입이 된다. 이러한 양면관계가 언약적 예배의식을 통하여 아름답게 표출되어진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부분과 우리들이 드리는 부분, 즉 양면관계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예배가 언약적이므로 목사는 한 개인으로서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목사와 회중 간의 대화가 아니다. 중재자로서 목사는 회중을 대신하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씀하는 것이다. 개혁교회는 예전을 통하여 말씀을 수종드는 목사를 철저히 신뢰하고 존경한다.
4. 개혁교회는 모든 직분자가 자기 직분을 따라 그분의 말씀의 방식으로 예배를 추구한다
두 번째 계명에서 여호와께서는 그의 백성에게 그분의 방식으로만 섬길 것을 가르치셨다. 누구든지 자기 스타일의 예배는 여호와께 가증스러운 것이다. 제4계명에서는 안식일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신다. 여호와께서는 자기 뜻대로 하는 예배와 인위적인 의식주의를 금하시고 그분의 백성과의 교제를 보존하신다.
구약에서 보면 아론의 자녀들이 여호와 앞에 이상한 불을 가져 왔다가 즉각 죽임을 당하였다(레 10:1,2). 엘리의 자녀들이 여호와께 속한 고기조각을 취하였다가 죽었다(삼상 2:12-17, 25,34). 인간적인 의식주의가 하나님을 진노하게 한 것이다. 하나님은 의식주의를 거절하시고 감사의 제사를 드리도록 가르치셨다. 말라기 선지자는 자기 방식대로의 예배와 의식주의를 대항하여 경고하였다(말 1:7-8, 12-14).
개혁주의 교회들은 목사만 섬기는 것이 아니다. 장로, 집사들이 받은 직분에 따라 능동적으로 봉사에 임했다. 목사는 말씀을 수종들고 장로는 교회예배를 감독하며 살피고 집사는 감사헌금을 거두어 섬겼다. 이처럼 회중과 직분자가 능동적으로 예배에 참여한다. 로마교회는 회중 없이도 사제만으로 예배가 성립되며, 회중교회는 목사나 장로가 없이도 평신도들이 예배를 인도한다. 그러나 개혁교회는 이 둘을 엄히 경계한다.
5. 개혁교회의 예배의 목표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감사하도록 하고 그분이 우리에 의해 찬양을 받도록 함이다. 결국 예배는 하나님을 말씀을 듣고 성례를 사용하며, 여호와 이름을 고백하며, 공적으로 여호와 이름을 부르며 찬양하기 위함이며, 가난한 그리스도인을 구제하기 위함이다. 예배는 주님과 그의 교회 사이의 언약적 모임이다. 주님은 구원을 교회에 주시기 위하여 말씀과 성령으로 임재하신다. 교회는 감사와 찬양으로 반응한다.
하나님 말씀 설교가 예배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예전은 설교보다 더하다. 예전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사이의 언약적 모임의 전부를 포함한다. 우리는 주님을 만나므로 우리의 예배는 전 마음과 신실한 순종을 반영하여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있어서 의식을 무시하지 않았다. 중세역사 가운데 예배가 로마에 의해 의식주의로 악화되었다. 개혁주의자들은 인위적인 의식주의 예배를 거절하였고 믿음을 강조하였다. 그러면서도 모든 형식을 제거하기를 원하였던 재세례파의 접근을 거부한 것이다. 규칙과 의식들은 필요하나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여야 한다. 여호와께 예배가 합당한 태도로 드려 지기 위하여서다. 교회 예전이 지나치게 회중의 주의를 끌기 위한 변화만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 실천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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